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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구리의 비밀 - 심경호

by 귤담 202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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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똥구리의 비밀

글쓴이 심경호 / 등록일 2024-04-22

이익(1681~1763)은 물결 위로 나비 떼가 빽빽하게 나는 광경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뱃사공은 물벌레가 변해 나비로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가을로 접어들 때 어떤 벌레가 마소의 털에 알을 슬어 놓았는데, 마치 마소의 위장에서 생겨 나오는 듯하다고 여겼다. 제주의 사슴들은 물고기가 변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장작(莊綽)의 《계륵편(雞肋編)》에는 “말라 죽은 이[蝨]가 아침 이슬에 젖으면 등에서 날벌레가 수없이 터져 나온다.”라고 했다. 주희는 호랑이가 죽을 때 눈의 광채가 땅으로 들어간다고 여겼는데, 《모정객화(茅亭客話)》에서 황휴복(黃休復)은 호랑이 눈의 정백이 땅에 떨어진 것을 호박이라고 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변증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익은 관찰을 토대로, 쇠똥구리(말똥구리)의 똥 경단인 낭환(蜋丸)에서 쇠똥구리 유충이 화생(化生)한다고 믿어온 통념을 강력하게 부정했다.

 

쇠똥 경단에서 쇠똥구리 유충이 화생한다고?

 

명나라 《정자통(正字通)》 虫部 6획 ‘吉’의 훈해는 “강랑(蜣蜋)은 똥 덩이를 둥글게 만들어 암수가 굴려다가 땅을 파고 넣고는 흙으로 덮고 간다. 며칠 되지 않아 똥 덩이가 절로 움직이고 하루 이틀이면 쇠똥구리가 나와 날아간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익은 쇠똥구리 하나가 똥 덩이를 다음 날 먹으려고 흙에 묻는 것이며, 똥 덩이가 벌레로 변할 리 없다고 부정했다. 그리고 똥 경환을 굴려가는 쇠똥구리 두 마리는 암수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며, 다른 한 놈도 눈독을 들여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익의 관찰 보고는 프랑스의 장 앙리 파브르(1823-1915)가 1879년의 《곤충기》 1권 ‘신기한 쇠똥구리’에서 발표한 내용보다 1세기나 빠르다.

 

젊은 파브르는 스카라바 사쿠레를 포함한 똥풍뎅이(쇠똥구리)가 대식가라서 먹이인 똥을 저장하려고 경단으로 만들어 굴려가는데 초대받지 않은 자가 그것을 빼앗을 기회를 엿보며 함께 굴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30년 후 스카라베 사쿠레의 땅 속 집을 발견하고, 양 똥으로 만든 별도의 서양 배[梨] 모양 경단 안쪽에서 타원형 알이 자라면서 그 별도의 경단을 먹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양 없는 곳에서도 스카라바 사쿠레가 살아갈 수 있는가? “내가 조사한 백여 스카라베의 집에서는 애벌레의 먹이로 만들어진 배 모양 구슬은 모두 양의 배설물로 되어 있다.”(오쿠모토 다이사부로 편, 이종은 옮김, 《파브르 곤충기》 1, 고려원미디어, 83면)

 

이익이 쇠똥구리에 관심을 둔 것은 화생(化生)의 의문을 풀고자 해서였다. 고전에는 ‘참새가 조개가 된다[雀爲蛤]’는 유명한 테제가 있다. 《예기》 「월령」에 보면 음력 3월이면 들쥐가 변하여 메추리가 되고 음력 9월이면 참새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고 했다. 이익은 장편 오언고시 「참새가 조개가 되다[雀爲蛤]」에서 “어찌하면 들쥐가 메추리 되어, 창고의 곡식을 보전할 수 있으랴?”라고 매듭지었다. 까치의 화생과 들쥐의 화생을 풍자의 우의(寓意)를 위해 빌려왔다.

 

자신의 관찰을 근거로 통념을 부정하다

 

이익은 용ㆍ봉ㆍ거북ㆍ기린 등이 모두 바다에서 생겨난다는 통념에 따라 ‘잉어가 변해 용이 되고 노어(鱸魚)가 변해 사슴이 된다’는 속어도 사실이라고 여겼다. 경신년(1740년) 굼벵이가 보리 뿌리를 파먹던 일을 회상하고는 굼벵이가 등에나 매미로 변한다는 설을 떠올렸다. 하지만 쇠똥구리의 경우에는 자기 자신의 관찰을 논거로 삼아 화생을 부정했다. 그리고 풍유시 2수를 작성해서, 사람들이 공동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척하지만 실은 극렬하게 암투하는 권력 세계의 속성을 비판했다.

 

이익은 물(物) 하나하나를 모두 궁구해서 알 수는 없다고 한탄했다. 생물이 종(種)이 다른 동물로 화생한다거나, 생명 없는 물질에서 생물이 화생한다거나 하는 종래의 설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통념을 완전히 부정할 만큼 다양하게 관찰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실험실 배양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생활세계에서 생성된 지식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했다. ‘종이 위의 인간’으로 머물지 않고자 결단한 것이다.

 

글쓴이 : 심 경 호 (고려대학교 특훈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