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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벌리기
글쓴이 김진균 / 등록일 2024-06-18
청백리로 유명한 명나라 관리 양계종(楊繼宗)이 가흥군을 다스릴 때 하루는 퇴근하여 저녁 밥상에 올라온 돼지머리를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어디서 난 것인지를 묻자 부인은 마부에게서 받았노라고 말했다. 곧장 북을 울려서 관청의 부하직원을 다 불러 모으고는, “나 양계종, 집안을 잘못 다스려서 처가 뇌물을 받았고, 내 몸도 불의에 빠지게 되었다.”라고 선언하면서 조협환(皁莢丸, 구토제)을 삼켜, 먹었던 음식을 다 토해내고 그날로 처자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율기(律己)’조에서 이 일을 언급하면서 군자의 행실은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마부에게 돼지값을 후하게 쳐주고 부인에게는 두 번 다시 물건을 받지 말라고 조용히 다짐받는 정도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부인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남모르게 돌려보낼 수도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약용이 비판하고 있는 핵심은 조용히 처리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을, 연극적 무대를 만들어 토하는 모습까지 전시하며 자신의 청렴결백을 크게 떠벌렸다는 점에 있었다. 명나라의 주신(周新)이라는 관리는 아랫사람이 바쳤던 거위고기를 집 안에 걸어두고 썩히면서 뭔가를 바치려고 오는 자가 있을 때마다 말없이 그것을 가리켰다고 한다. 정약용은 썩혀버릴지언정 아랫사람들에게서 받은 물건 하나라도 자기가 소유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의지의 상징으로 이와 같은 일화를 덧붙여 기록하고 있다.
법이 있으면 뭐하나
조선왕조에서 양형을 위해 참조하던 명나라의 법률 『대명률』에서는 뇌물을 받으면 일단 파직시키고 그 액수가 80관에 이르면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조선왕조 자체 법률인 『경국대전』에는 관원이 뇌물죄로 처벌받으면 그 관원을 천거한 사람도 처벌하고, 처벌받은 관원의 아들과 손자도 임용되지 못하게 하는 연좌제의 규정까지 있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뇌물로 인한 사건사고는 3,500여 회에 육박하고 있으며, 뇌물 관리를 용인하는 왕에게 조치를 촉구하는 상소도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법과 규정이 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당시 사람들이 뇌물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법을 적용할 때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뇌물 청탁으로 이익공동체를 이룬 집단에서 서로 감싸주고 이끌어주며, 왕도 뇌물 구조를 바로잡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부패지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조차도 중신들이 고가의 음식을 뇌물로 받은 일을 집단으로 고백하며 서로 엄호하자 음식은 뇌물로 처리하지 말도록 조치하였으며, 36명의 노비를 뇌물로 받아 금액으로 환산하면 사형 기준의 10배에 이르게 된 병조판서 조말생을 유배형으로 처분하여 우리의 실망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세상은 여전히 부패공동체가 주도하는가
『목민심서』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부정부패의 정도가 최악으로 치달아, 정약용은 터럭 하나 머리카락 하나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절규할 정도였다. 19세기 삼정의 문란은 대개 거대한 뇌물 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가혹한 착취가 야기하는 것이었으며, 「애절양」에서처럼 사내아이를 낳은 아비가 스스로 제 물건을 끊어버리는 극단적 참상까지 이어지는 일이었다. 국가를 장악한 집단이 부패공동체가 되어버리면 희귀하게 성취한 대동법이니 균역법이니 하는 개혁 법안들도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반부패 총괄기구’를 자처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 배우자의 명품백 수수 사실에 대해 청탁금지법 위반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을 잘 알겠지만, 그럴수록 정권 관계자들은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다든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므로 문제가 없다고 부조리 연극 대사처럼 외쳐댄다. 반부패 따위는 관심 없고 오로지 대통령 부부만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극적 행위이며, 부패를 크게 떠벌리는 것이다.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정권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앞으로도 많은 정부 기관이 이 연극 무대에 올라서 부조리극을 시연할 것이며, 이 극적 행위로부터 새로운 국가적 부패의 지평이 열리게 되리라는 점이다.
■ 글쓴이 :김 진 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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