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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만이 두려운 존재다 - 박석무

by 귤담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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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만이 두려운 존재다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4-09-02

《서경》이라는 책은 중국 고전 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지닌 책입니다. 모든 인류가 동경해 마지않는 요순시대의 정치와 정치사상이 정리된 책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의 본질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왕도정치의 구현을 그렇게도 바랐던 공자·맹자·다산 또한 정치사상의 핵심은 언제나 《서경》에 근본을 두었습니다. 〈대우모〉편에 ‘가외비민(可畏非民?)’, 즉 ‘두려워할 만한 것이 백성이 아니겠는가?’라고 표현하여, 바로 백성만이 가장 두려운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민유방본 본고방녕(民惟邦本 本固邦寧)’ 곧 ‘백성들이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견고하고 튼튼해야만 나라가 안녕하다’라는 선언을 하였습니다.

 

‘민유방본’에서 민본주의(民本主義)라는 동양의 정치철학이 정립됩니다. 민본은 바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개념과도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서경》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젊은 시절은 군사독재가 백성을 탄압하던 시절이어서 ‘민본’ 두 글자는 더욱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던 백성의 뜻을 뒤엎는 부정선거를 목도하면서 우리가 들고일어났던 4·19는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우리가 근본이고 주인이니 독재자는 물러가라고 외쳤던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60년대 군사독재와의 싸움, 70년대 유신독재와의 강고한 투쟁은 다름 아닌 백성이 주인이니 독재자는 타도해야 한다는 《서경》의 정신을 실현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고,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혹독한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가요. 1998년 마침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룩되어서 바야흐로 독재시대는 물러가고 이름 그대로의 민본,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길고 긴 암흑의 군주시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태양 아래 백성의 세상을 맞이했노라는 생각에서, 우리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노라는 자부심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좋아지자 관여하던 정치도 손을 끊고 평생의 소원이던 학계로 돌아와 학문연구에 온 정신을 바쳤습니다. 많은 저서도 나왔지만 대학에서 다산학을 본격적으로 강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탄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쓰고 강의를 할 수 있었으니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의 한 사람임이 증명되었던 때입니다.

 

그처럼 훌륭하던 민주주의, 앞 전의 정권에 이르러 민주주의 본질이 퇴색되고 파괴되면서 숨 막히는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국민의 뜻을 거역하고 표현의 자유까지 박탈되자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 대통령이 파면당하는 불행을 맞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엊그제인데, 오늘의 정권은 검찰독재라는 신종의 독재로 국민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200년 전 다산 정약용도 가장 두려운 것은 백성과 하늘이라면서 백성의 뜻을 거역하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독재자를 퇴진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천하고 약한 백성들이지만 그들이 분노하면 어떤 권력도 무너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성군(聖君)들의 정치는 하기 어렵다 해도 민주주의의 기본이라도 실천하면 백성들은 따르지만, 뉴라이트들을 앞세워 친일의 본색이 드러나는 정치를 한다면 백성들은 절대로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굴종만 하는 굴욕적인 친일 외교를 멈추라는데, 그대로 밀고 간다면 언제까지 인내할 수 있을까요. 백성들을 주인으로 여기면서 그들이 무서운 존재임을 새롭게 인식하기를 권력 당국에 권고합니다.

▣ 글쓴이 : 박석무(다산학자・우석대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