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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전성시대가 의미하는 것
글쓴이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 등록일 2024-09-03
최근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필자는 사도금산을 둘러싼 대일외교에서 ‘불법적 식민지배’라는 역사전쟁의 불후퇴방어선을 포기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본다. 일본은 사도금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면서 강제동원의 사실을 교묘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지웠고, 우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일본이 성의를 보였다는 아이카와향토박물관의 전시실 가벽에는 아베 내각이 강제성을 지우기 위해 발명해 낸 ‘조선반도출신 노동자’라는 용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모집, 알선, 징용이 당시 법령 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음이 강조되어 있다.
또 다른 가벽에는 ‘사도광업소 반도노무관리에 대하여’라는 문건이 내걸려 있다. 어쩌면 이쪽 내용이 더 심각하다. 위생에 관한 항목에는 “반도인 특유의 불결한 악습을 시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설의 완비를 도모(하여...) 위생관념 보급에 힘쓴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관대한 식민지배자의 얼굴이 보인다.
한일 역사전쟁에서 후퇴, 남남 역사‘내전’으로
이후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혜’였다는 일본 측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뉴라이트’ 역사인식이 전면화하고 있다. 7월 30일에는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집필자인 김낙년 전 동국대 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취임하고, 8월 6일에는 1919년 건국설을 ‘치명적인 오류’라고 주장하는 김형석 대한민국역사미래 이사장이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었다.
이에 반발한 광복회가 불참함으로써 반쪽짜리로 전락한 광복절 행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사 언급 없이 경축사를 발표했다. 한일 ‘역사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남남 ‘역사내전’을 개시하는 선전포고로 들렸다. 그리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언이 나왔다.
이후 역사내전은 건국절과 국적 문제를 전선으로 삼아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논쟁의 핵심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다. 이와 관련해 정작 뉴라이트 운동의 정신적 지주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은 어땠을까.
1951년 1월 말,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대일강화에 대한 한국의 근본방침’에는 “1904년부터 1910년까지 한국정부가 강요당한 제 조약의 폐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952년 2월 15일 한일회담 본회담 제1차 교섭이 개시된 뒤, 한국 정부가 3월 5일 제시한 기본조약안에는 위의 근본방침에 따라 이들 조약이 무효(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삽입되었다.
이 ‘구조약 무효확인조항’은 ‘일본의 마음’을 건드렸다. 일본 측은 이 조항이 “일본 국민의 심리적 측면에 불필요한 자극을 줄 염려가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 측은 이 조항이 일본 국민의 감정을 자극한다면 일본이 아직도 침략행위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고 일갈하고, 이 조항이 “한국민의 민족감정에 나타난 기본노선”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당시 우리 측 대표였던 유진오에 따르면 이 조항의 삽입은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하는 것은 한일 역사전쟁에서 불후퇴방어선이 되었다. 그런데 사도금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며 이로부터 물러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의 역사내전은 전진기지화의 전초전?
김태효 차장은 작년 3월 ‘제3자 대위변제’ 방침을 설명하며, “대통령과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무엇을 주고받는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후 대일외교는 일본의 마음을 사는 데 집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진짜 전선은 역사가 아니다. 지난 8월 27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한일상호군수지원협정’(한일ACSA)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알게 해 주는 사건이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이라는 것은 평시에는 물론 전시에 각종 군수 물품과 용역을 지원하는 협정을 말한다.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제외하고 모든 영역에서 상호간에 군사지원과 협력을 약속하는 것인데, 후방지원의 전쟁으로 치러지는 현대전에서 거의 동맹조약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개시한 남남 ‘역사내전’은 한반도의 남부를 대륙봉쇄의 전방 전진기지로 내어 주기 위한 전초전인지 모른다.
■ 글쓴이 : 남 기 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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