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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복신앙, 좋은 기복신앙 - 김환영

by 귤담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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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복신앙, 좋은 기복신앙

글쓴이 김환영 / 등록일 2024-10-08

“전쟁은 장군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 중요하다”는 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의 말처럼, “기복신앙은 신앙인들에게만 맡겨놓기에는 너무 중요하다”라는 말도 성립한다. 둘 다 잘못되면 불행을 낳는다.

 

그런데 잘된, 건강한 기복신앙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낳을 수 있을까? 사전적 의미에서는 그렇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기복신앙은 “복 받기를 기원하는 신앙”, 기복신앙의 복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이다.

 

기복신앙, 헌법도 보장하는 ‘행복 추구’

 

기복신앙을 달리 표현하면 헌법도 보장하는 ‘행복의 추구’인 것이다. ‘행복의 추구’는 기복신앙의 현대적∙세속화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복신앙에 대한 종교계∙학계∙세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우선,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를 전통 종교문화에 내재된 기복신앙이 왜곡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기복신앙의 부정적 측면이 분명 있겠지만, 기복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무교(巫敎)가 개신교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더라도, 개신교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자체에 기복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기복신앙이 내부에 존재한다. ‘그들의 기복신앙 대(對) 우리의 순수신앙’이라는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실재하지만, 각 종교 내부에도 ‘물질적 기복신앙’과 ‘비물질적 기복신앙’ 사이에 다툼이 있다. 내부와 외부의 기복신앙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좋건 나쁘건 어떤 종교적∙신앙적, 그리고 세속적 결과가 나온다.

 

그리스도교∙불교 같은 글로벌 종교의 경전에도 기복이 빠지지 않는다. 구약을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자손∙재물∙장수와 같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유대교 신자들은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을 지킴으로써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구약의 복은 신약의 팔복(八福)으로 이어진다. 유교에는 오복(五福), 즉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있다. 이슬람에는 알라의 축복, 번영, 형통함을 의미하는 바라카 개념이 있다.

 

불교에는 삼복전(三福田), 즉 ‘복을 받기 위하여 공양하고 선행을 베풀어야 할 세 가지 복의 밭’이 있다. 상좌불교의 길상경(吉祥經)은 행복의 본질을 논한다. 또 불자들은 복을, 줄지 않는 무루복(無漏福)과 영원하지 못한 유루복(有漏福)으로 나누기도 한다.

 

다양한 모습의 기복, 글로벌 종교의 경전에도

 

무루복∙유루복에 해당하는 내용이 신약에도 나온다.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요한의 복음서 4: 13~14)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무루복이 다시 목마르게 하는 유루복 보다 나을 것이다. 부귀영화∙무병장수가 아무리 좋은 것이더라도 신앙인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열반이나 구원일 것이다. 기복에도 우열이 있다. 또한 기복에는 단계가 있고, 기복을 얻는 수단의 차이가 있다. 기복신앙으로 출발해 순수신앙으로 나아가는 신앙인이 있다. 묫자리나 부적, 굿으로 복을 꾀할 수도 있고, 선행을 통해 복을 기대하기도 한다. 기복신앙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종교의 종파나 신학은 기복신앙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예수가 한 이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뜻이 다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오의 복음서 21:20) 여기서 ‘무엇이든지’에는 무병장수나 부귀영화가 포함되는 것일까 아니면 배제되는 것일까. ‘무엇이든지’를 주로 재물로 이해하는 신앙인들은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의 성격이 강한 교단에 속하게 된다. 그들은 재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데 굳이 받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몹시 답답하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학점이 높게 나오는 게, 높은 학점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좋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복을 받는 게, 복 받으려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학점과 복을 추구하는 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글 쓴 이 : 김 환 영 (지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