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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질곡을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기초로 - 남기정

by 귤담 2025.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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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질곡을 넘어 동북아 평화의 기초로

글쓴이 남기정 / 등록일 2025-01-21

2025년은 해방 80년, 한일 국교정상화 60년, 을사늑약으로부터는 120년이 되는 해다. 1875년 운양호 사건 이래 한국과 일본은 150년의 불행한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120년 전 체결된 을사늑약이 문제다.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발발 전에 대외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선전포고도 없이 대한제국에 공격을 개시하여 주요 지점을 점거했다. 이는 명백히 국제법에 반하는 불법적 행동이었다. 한일의정서는 이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불법 점거는 한반도 전체로 확대되었다.

 

한국병합조약은 을사늑약에 기초하고 있었기에 원천적으로 무효였으나, 60년 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서 이에 대해 양국이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바람에 역사 갈등이 반복되어 왔다. 그 입장 차이는 ‘제3자 대위변제’로 일본 측 해석에 다가선 윤석열 정부 하에서조차 좁혀지지 못하고 사도광산 문제의 파행에서 고스란히 다시 드러났다.

 

60년 한일기본조약의 한계 극복을

 

한편 뉴라이트를 전면 배치시켜 식민지배의 성격에 대한 일본 측 해석에 접근하던 윤석열 정부가 급기야 ‘반국가세력’을 언급하며 비상계엄 선포라는 만행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사실은 비상계엄 하에서 겨우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 이미 배태된 현실이었다. 한일기본조약은 과거사를 봉인하고 동북아시아의 분단과 남북의 군사적 대치를 온존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합법성 문제와 관련한 기본조약 제2조와 제3조의 관계가 이를 반영하고 있었다. 한일 수교 60년에 즈음하여 한일 과거사 갈등과 동북아 비평화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일기본조약 제2조, 제3조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그 동안 조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제2조 문제에 집중해서 전개되었다. 그 성과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2010년의 간 나오토 담화다. 특히 2010년 간 담화가 중요하다. 일본의 한국병합 100년의 해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간 담화는, 같은 해 봄부터 전개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의 운동이 낳은 성과였다. 이 공동성명은 기본조약 제2조 문제와 관련하여 병합에 이르는 조약과 협정이 불법무효였다는 한국 측 해석을 일본이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2015년에 발표된 아베 담화는 이를 부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년에 즈음하여 일본에서 다시 이들의 목소리가 조직화되고 있다. 이들은 제2조 문제, 즉 식민지배 불법성과 관련하여 한국 측 해석을 일본이 보다 명확한 형태로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제3조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이 한반도의 또 다른 합법 정부임을 확인하고 북일 수교에 나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탄핵국면, 한일관계 대전환의 기회로

 

거의 같은 시기 우리 시민사회에서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즈음한 새로운 관계 설정을 고민하는 목소리들이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2023년 3월 제3자 대위변제 해법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처음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일 국교정상화 60년의 해에 맞이한 탄핵국면은 한일관계 대전환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에서 일본이 한국의 해석을 수용하여 일본의 한국병합이 불법무효라는 원칙을 확인하고, 제3조에서 북한이 수교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는 일본 측 해석에 입각해서 북일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한일관계가 역사의 질곡을 넘어 동북아시아 평화의 기초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2010년의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은 양국에서 1,000명의 서명자를 모아, 간 담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냈다.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즈음하여, 한일의 시민과 지식인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이시바 내각을 그에 대응한 행동으로 이끌어낸다면 한일관계는 식민지 역사 청산의 모범 사례이자 동북아시아 평화구축의 진지가 될 수 있다.

 

2025년 한일 양국이 운양호 사건 이래 불행했던 150년의 역사를 종식시킴으로써 명예로운 양자관계를 회복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적 발전에 기여하면서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인류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 내는 출발점이 되길 기원해 본다.

 

 글쓴이 : 남 기 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