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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공동패권론
글쓴이 김환영 / 등록일 2025-02-04
어느 우스개에 따르면 ‘내셔널지오그래픽’과 ‘플레이보이’의 공통점은 ‘그림의 떡’이다. 두 잡지에 나오는 사진들의 실물을 접할 일이 없다는 뜻.
패권을 ‘그림의 떡’으로 치부할 수 없다. 단군 이래 패권은 ‘죽느냐 사느냐’ 문제다.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진 고조선과 고구려는 사라졌다. 신라는 패권을 꿈꾸는 나라였다. 신라인은 진흥왕 14년(553년)에 건립한 황룡사 9층 목탑에 주변 아홉 나라를 제압한다는 염원을 담았다.
고려와 조선에서도 패권의 꿈이 생생했다. 단재 신채호가 말한 일천년래 대사건(一千年來大事件)의 주인공인 12세기 승려 묘청은 천도하면 ‘36방의 주변국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길산과 관련한 조선왕조실록 숙종 23년(1674) 기사에도 “우리나라를 평정하여 정성(鄭姓)을 왕으로 세운 뒤에 중국을 공격하여 최성(崔姓)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무모한 사람들이 나온다. 효종(1619~1659)의 북벌론 또한 패권의 문제였다.
이제는 패권에 눈 떠야
현대사에서도 패권은 우리 화두다. 지정학적으로 주변 열강 4개국이 모두 패권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영원히 미국을 앞설 수 없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미국과 함께 G2인 ‘중국이 언젠가는 패권국(hegemon)이 된다’에 베팅하는 사람도 많다. 소련은 냉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패권국 자리를 노렸다.
1983년 소련이 우리 민항기를 격추해 탑승객 269명이 전원 사망했다. 그때 TV 뉴스에 나온 국민의 분노가 지금도 생생하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도 초강대국이 되어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당시 분노를 승화한 비결 중 하나는 ‘곧 선진국이 된다’는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선진국 된 지금은 패권에 눈 떠야 한다. 허무맹랑하지 않다. ‘꿈은 이뤄진다’는 축구나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진리다. 꿈을 놓치면 나쁜 결과가 기다린다.
일본이 그런 경우일까. 에즈라 보걸의 책 《세계 최고의 일본(Japan as Number One》(1978)이 상징하는, 당시 잘나가던 일본의 미국 추월이 진지하게 논의됐다. 미∙일 ‘공동패권(bigemony)’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기회를 놓친 일본은 상당수 분야에서 한국에 뒤지는 처지가 됐다.
모든 일은 예언된다. 틀린 예언자와 맞는 예언자가 있을 뿐.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사세휘(謝世輝)는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1986)에서 2010년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다고 예측했다. 그의 예측은 약간 다르게 실현되고 있다. 2023년 US 뉴스가 보도한 세계 국력 랭킹에서 한국은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에 이어 6위였다. 7위 프랑스와 8위 일본을 앞섰다. 한국을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역사적으로 패권과 밀접했다.
특정 분야에서 공동패권을
G2 관계에서 패권은 ‘기피’ 단어다. 패권을 대신해 미국은 ‘글로벌 리더십’, ‘국제 질서’를, 중국은 ‘중국의 꿈’ ‘신형국제관계’ ‘일대일로’를 쓴다. 그런데 패권에 대한 G2의 동상이몽이 문제다. 또 패권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전임자들과 다르다는 게 문제다. 미국의 패권은 미국의 희생과 봉사를 요구했다. 트럼프는 패권국이 받는자(taker)가 되려면 주는자(giver)가 돼야 한다는 이치를 무시한다.
‘중국은 이미 망했다’고 보기엔 중국의 패권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은 문화적 영향력∙우월성과 역사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속국’ 한국은 대국 중국의 모든 것을 따라해왔다는 논리로 무장한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이 중국의 모든 것을 도둑질한다고 분노한다. 문화적 패권을 중시하는 그들은 그래서 문화 한류의 성공이 불편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패권은 “어떤 분야에서 우두머리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여 누리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영화나 인공지능 같은 특정 분야에서 공동패권을 추구해보자.
서구화는 공맹지도(孔孟之道)를 추구하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무시한 잘못을 반복할 수 없다.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나 화두가 똑같이 들리는 몽중일여(夢中一如)의 정신으로 국력 상승을 위해 노력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 글쓴이 : 김 환 영 (지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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