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4월 9일
“써먹지 못하는 많은 교육보다 적게 적용되는 교육이 차라리 낫다.”-프란시스 베이컨(1626년 오늘 세상떠난 영국철학자, 영국 경험론의 시조, 귀납법 창시, 『수상록』 『학문의 진보』 『노붐 오르가눔』 『뉴 아틀란티스』 합리론의 데카르트와 함께 근세철학의 개척자로 꼽힘)
*대일본 전쟁 희생자 추모일(Bataan Day): 필리핀
*국가 통일의 날(Day of National Unity): 조지아 (국가)
*순교자의 날(Martyr's Day): 튀니지
*핀란드어의 날(Day of the Finnish Language): 핀란드
1108년 [음]예종(睿宗) 3년, 윤관과 오연총이 개선하자 동교에서 위로하는 연회를 베풂
1122년 [음]인종(仁宗) 즉위년, 왕의 즉위를 태묘와 9릉에 고함
1196년 (고려 명종26)최충헌, 이의민 죽이고 권력잡음, 명종 쫓아내고 신종-희종-강종-고종 네 임금 제멋대로 세움, 1198년 노비 만적 등 난을 일으키려 모의하다 발각된 100여명 강물에 던져 죽임
1273년 [음]경략사 힌두 등이 출정함
1402년 [음]태종 2년, 의례 상정소(儀禮詳定所)에 명하여 무과(武科)의 벼슬 이름을 문과에 의거하여 정함
1402년 [음]개국 공신 이지란(李之蘭) 죽음
1482년 [음]성종 13년, 일본 사신이 대장경을 요청함
1516년 [음]중종 11년, 정광필이 영의정, 김응기가 좌의정이 됨
1536년 [음]중종 31년, 폐사된 정릉사(貞陵寺)·원각사(圓覺寺)의 종을 숭례문과 흥인문에 옮겨 달게 함
1637년 [음]인조 15년, 최명길(崔鳴吉)이 우의정이 됨
1667년 [음]현종 8년, 영남 일대에 집이 흔들릴 정도의 지진이 일어남
1676년 [음]숙종 2년, 인선 왕후(효종 비)의 부묘제(祔廟祭, 삼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모심)를 지냄
1686년 [음]숙종 12년, 충청도 쌍수 산성(雙樹山城)에 무너진 곳이 생기자 승군(僧軍)을 뽑아 보수함
1695년 [음]숙종 21년, 《오례의(五禮儀)》의 관례조(冠禮條)를 이전으로 환원함
1723년 [음]경종 3년, 경종 시해 모의를 고변한 목호룡(睦虎龍)에게 집 한 채를 줌
1728년 [음]역변(逆變)이 해결된 것을 태묘(太廟)에 고하게 함
1728년 [음]난을 일으킨 박필충(朴弼忠)·박필호(朴弼虎) 형제를 효시함
1761년 [음]영조 37년, 관상감(觀象監)에서 남산(南山)에 올라가 일식(日食)이나 월식(月食)을 관찰할 것을 청함
1763년 [음]영조 39년, 암행어사 홍양한(洪亮漢)이 전라도 태인에서 갑자기 죽음
1776년 [음]정조 즉위년, 백성에게 폐단을 끼치는 액정서(掖庭署)의 하례(下隷)들을 처벌하게 함
1785년 [음]정조 9년, 서양 천주교 서적(書籍)을 금함
1785년 서학의 옥(獄) 발생
1786년 [음]정조 10년, 소를 기르는 사람에게도 부역을 면제하여 줌
1803년 [음]순조 3년, 함흥에서 화재로 민가 2,675호, 곡식 1,980석 등이 연소됨
1811년 [음]순조 11년, 평안도 안주에서 화재로 민가 528호가 연소되고 사망자 2명 발생
1830년 [음]순조 30년, 장악원(掌樂院)에 옛날 음악을 익히게 함
1855년 한말의 의병장 손영각 출생
1858년 [음]철종 9년, 함흥부의 불탄 민가를 구휼함
1877년 [음]무위소 숙위, 용호영·총융청 총괄
1894년 [음]동학 농민군, 고창 무장현 점령, 〈창의문〉 발표
1898년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
1923년 저축 장려한 첫 극영화 ‘월하(月下)의 맹서(盟誓)’ 상영
--한국 최초의 극영화로 알려진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세>가 경성 호텔에서 신문통신기자를 비롯한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연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저축을 장려할 목적으로 만든 이 계몽극에는 한국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가 출연했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영화는 신파극단 신극좌를 이끌었던 김도산의 <의리적 구투>로 연극 장면 가운데 필요한 대목을 영사 화면으로 만들어 공연 중에 비추는 활동사진 연쇄극이었다. 1923년 1월 23일 본격적인 활동사진의 틀을 갖춘 활극 <국경>이 단성사에서 개봉되었고, 이어서 극영화의 형식을 띤 <월하의 맹세>가 상영되었다.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단성사에서 개봉되면서 한국영화의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1924년 김구 임시정부 국무총리 직무대리 취임
1924년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김재규 출생
1926년 평남 맹산·순천·덕천 화전민들, 화전민 대회 개최
1927년 이상재 장례식, 종로 중앙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사회장으로 거행
1946년 대구 맹아학원 개설
1949년 캐나다, 한국 승인-캐나다 정부는 대한 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라는 국가 승인
1954년 흥사단 금요강좌 개강
1961년 서울 창신동 화재로 230동 소실
1962년 한국-이스라엘, 국교 수립
1964년 최두선 총리, 맥아더 원수 사망 장례식 참석차 존슨 미국 대통령과 회담
1965년 독일과 무역협정 체결
1967년 진해 제4 비료공장 준공
1968년 성매매 여성을 살해한 미군 일병에 8년 선고, 〈한미 행정 협정(SOFA)〉 발효 후 첫 살인죄 적용
1973년 〈워싱턴포스트〉, 주한 미군의 핵미사일이 한반도의 전쟁 억지에 공헌했다고 보도
1973년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였다
--19세의 이에리사는 중국과의 8강전에서 두명을 연다아 꺽어 만리장성을 넘고 이어 벌어진 헝거리와의 준결승과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이겨 여자 단체전에서 건국이후 첫 구기종목 우승의 쾌거를 이루었다
1975년 인혁당사건 관련자8인 사형확정판결 18시간만에 사형집행, 확정판결 다음날 사형집행은 극히 드문 일, 사형선고통지서가 사형집행 이후에 도착, 고문흔적 없애려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할때 불법화장, 국제법학자협회는 대표적 인권침해사건이라며 이날을 ‘사법암흑의 날’로 지정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이 1975년 4월 9일 새벽 긴급조치 1호-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반공법 위반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8명은 여정남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흥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이다.
이들은 소위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 세력이란 이유로 1974년 체포되어 동년 6월 15일 비상군법회의 1심 재판을 거쳐, 1974년 9월 비상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은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린 지 만 19시간 만인 이날 새벽 집행됐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 법학자 회의는 이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으로 의혹받는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사건은 1964년 제1차 인혁당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이 북한 노동당의 강령을 토대로 한 대규모 지하조직을 구성, 활동한 혐의로 인혁당계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함으로 전모가 드러난 인혁당 사건은,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로부터 넘겨받은 공안부 검사들마저 피의자들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소장 서명을 거부하는 항명 파동을 일으킬 정도로 사건 자체가 조작 혐의가 짙었다.
재판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임이 밝혀져 관련자 대부분이 무죄를 선고 받고 일단락되었던 이 사건의 망령이 10년 후 다시 살아나 젊은 운동가들이 인혁당을 재건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결국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1976년 전매청, 담뱃갑에 〈지나친 흡연 삼갑시다〉 경고문 첫 기재
1979년 고리원자력발전 3호-4호 착공
1983년 충남서산군 태안반도앞 마도 해저 협곡서 청자ㆍ백자등 자기류 1000여점 발견
1983년 문화공보부, 과천소재 서울대공원에 국립 현대미술관 건립계획
1983년 대학 여름학기 신설
1984년 LA올림픽 단일팀구성 위한 제1차 남북체육회담 판문점서 열림
1984년 남북한체육회담, 북한측의 일방적퇴장으로 결렬. 4월30일 회담재개ㆍ성과없이 끝나
1984년 아시아 청소년농구대회에 출전 중화민국팀, 개막식 중공 국기 게양반발 불만, 대회 불참 출국
1985년 북한 남북국회회담 개최 제의
1986년 한ㆍ일민간경제위 개막(∼11일, 동경), 부품 개발협력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 채택
1986년 런던에서 한-영 정상회담. 양국교역확대등 합의
1987년 민정당, 특별성명을 내고 두 金氏의 신당창당 선언은 합의개헌 말살기도라고 규정
1987년 릴리 주한미대사, 기자회견 갖고 한국정치의 중요 요소는 정치문민화·언론자유라 강조
1987년 택시운전사 2000여명, 업적급여제 폐지 요구 차량시위, 264명 연행
1987년 강원도 양구에서 BC5~10세기경의 제단 고인돌 1기 발견
1987년 한국-과테말라, 경제기술협력협정 체결
1988년 인천지방법원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의 문귀동 경장 고소1년9개월만에 구속수감
1988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재야 16개 단체, '反민정당 총선투쟁연합'결성
1988년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의 문귀동경장 구속수감
1989년 경남 합천서 결혼하객을 실은 버스가 봉고차와 충돌후 강에 추락, 7명 사망, 30여명 중경상
1989년 김기훈선수가 89세계남녀실내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 1000m서 우승
1990년 중국의 화북지방이나 몽고의 고비사막 등에서 발생한 모래와 흙먼지 황사현상이 8일에 이어 계속.
1990년 서울시는 종로구 가회동 등 9개 지역 19만 5000평을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
1991년 평민-신민주연합, 통합대회를 열고 신민주 연합당을 출범시키고 총재에 김대중씨 선출.
1991년 박노해씨(33) 부인가족과 변호인, 부부의 사생활까지 왜곡 발표했다'며 안기부와 언론사를 고소-발표
1991년 민족통일연구원 개원
1992년 북한중앙방송,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국제핵 안전협정을 조건부로 비준했다고 보도
1992년 법무부, 국적 법개정 안을 마련, 입법예고.
1992년 국방부, ‘북괴’ 등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용어와 조항에 대한 정비 착수
1993년 청와대 앞길 개방해 관광코스로
1993년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국내 첫 개발
--연세대 부설 아식(ASIIC) 설계공동 연구소가 국내최초로 독자적인 설계기술에 의해 컴퓨터의 핵심소자인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했다고 1993년 4월 9일 발표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컴퓨터의 가장 핵심적인 부품으로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명령축소형(RISC)의 최신방식으로 설계됐다.
당시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국내 기술현황은 일부 연구소와 기업에서 8비트급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설계하고 있었으며 16비트급 이상에서는 외국기술에 의존하여 제작하고 있었다. 가로 세로 9㎜크기의 이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20메가헤르츠의 주파수에서 초당 2천만개의 명령어를 처리하는 기능을 가졌으며 14만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하고 있다.
1993년 경원대 입시 비리-재단비리-최형우 민자 사무총장 사퇴
1993년 오병문 교육부장관과 정해숙 전교조위원장 첫 공식대화.
1993년 연세대 주문형 반도체설계 공동연구소, 워크스테이션급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 칩 개발.
1993년 최고 인민 회의 제9기 5차 회의 : 김정일을 국방 위원장에 추대.
--북한은 1993년 4월 9일 속개된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군총사령관인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추대하고 공석이 된 제1부위원장에는 현 부위원장이자 인민무력부장인 오진우를 선출했다.
김정일은 1990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임된 후 1991년 12월 24일 군총사령관에 임명됐다가 1992년 3월 개정된 헌법에서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격상된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추대됨으로써 전반적 무력의 통수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
북한헌법 1백13조는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일체 무력을 지휘 통솔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군최고사령관으로 군지휘권을 갖고 있던 김정일이 국가보위부, 사회안전부, 노동적위대, 청년근위대 등 정보기관, 경찰 및 예비병력까지 모두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북한헌법은 또 국방위원회의 권한으로 중요군사간부 임명 또는 해임, 유사시 전시 상태와 동원령 선포 등도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장 군총참모장 등 군관련 요직의 인사권을 갖게 됐다.
1994년 정부, 행정에 대한 국민의 고충민원을 전담 처리할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김광일 변호사) 공식 출범
--행정에 대한 국민의 고충민원을 전담 처리할 `국민 고충처리 위원회`가 1994년 4월 9일 정부합동민원실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이날 출범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광일 위원장과 최종백 변호사, 허범 성대교수, 신대균 경실련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처장, 손정 상임위원등 5명의 위원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1994년 1월 공포된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기본법`에 따라 국무총리 직속으로 발족된 고충처리위원회는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행정처분으로 인한 국민의 권익침해를 조사해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국민들이 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는 고충민원은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행정행위를 비롯, 공사공단등 공공단체, 행정권한을 위임위탁받은 협회조합 등의 민원처리에 따른 불편 및 애로사항 등이다. 특히 민원접수거부, 처리지연 등 행정상의 잘못이나 불합리한 제도시책으로 인한 국민불편 및 애로사항도 접수대상에 포함된다.
1994년 일본총리 전격 퇴진-고리 사채놀이로 정치자금 조달
1994년 박찬호(LA다저스) 미국 메이저리그 첫 등판(애틀랜타 전)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UR) 비준반대 집회 - 전국 3만여명 가두행진
1995년 중소기업진흥공단, 베트남과 투자사절단 상호 교환 등의 중소업체들의 對베트남 투자진출 지원 발표
1996년 김광진 북한군 차수, 한반도 전쟁발발은 시간문제라며 주민은 동원태세ㆍ전투훈련에 참가할 것을 촉구
1997년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국회 한보 청문회에서 청와대와 재정경제원 개입 인정
1998년 삼성그룹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 선언
1999년 80년전 임시정부 요인 130여명 사진 첫 공개
--1920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된 직후 130여명이나 되는 임정 요인들이 애국지사의 장례식에 모여 찍은 초대형 사진이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동오 안태국(?∼1920) 선생 장례식때 찍은 이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 안창호 이동휘 이광수 여운형 선생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모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희귀 자료다.
안태국 선생은 을사조약 후 평양에서 협동사를 설립, 실업구국운동에 참여하고 1907년 양기탁, 안창호를 중심으로 한 신민회에가입, 최고위 간부로 활약했다. 이광수(왼쪽에서 26번째 모자든 사람들 가운데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 여운형(34번째 뒷짐지고 수염 기른 사람), 정인과(44번째 얼굴 왼쪽으로 돌리고 안경 쓴 사람), 신익희(55번째 지팡이 든 사람), 이동휘(70번째 깃발 아래 수염 기른 사람), 김구(82번째 수염 기른 사람), 차이석(103번째 주먹쥔 사람), 김희선(104번째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사람), 안창호(111번째 수염 기른 사람) 등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은 한국 근현대사연구회가 임정 수립 8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한 도산 안창호 선생 외손자 필립 안 커디씨가 공개했다.
1999년 영화 〈쉬리〉, 관객 197만여 명 돌파, 역대 최다 관객 동원 기록 경신
2002년 중소기업청, 외국인 근로자 인권침해 업체는 각종 정부지원에서 제외한다고 결정
2007년 코스피지수 사상 첫 1,500돌파(1,501.56)
2008년 제18대 총선, 한나라당 153석 원내 과반의석 확보로 의회권력 교체
2009년 프로야구에서 송진우가 최초 통산 3000이닝을 달성
2009년 북한 12기 최고인민회의 첫 회의 - ‘김정일 3기 체제’가 공식 출범
2010년 한명숙 전 총리 뇌물혐의 1심 무죄
2013년 북한노동자 철수로 개성공단 가동중단
201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자 김정은, 당 제1비서로 재추대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 숨진 채 발견
--검찰 수사를 받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북한산에서 자살했다.
그의 주머니에선 정치인의 이름과 돈 액수를 적은 메모가 발견되었다. 허태열 7억, 홍문종 2억, 유조옥 3억, 홍준표 1억, 부산시장 2억, 김기춘 10만불, 이병기, 이완구 였다.
대부분 여권 핵심인사였던 만큼 파문은 커졌다
검찰은 7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전총리와 홍지사는 불법자금 수수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나머지는 무혐의 또는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2018년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기소됨,
--다스 비자금 조성 등 횡령‧다스 법인세 포탈‧다스 140억원 회수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등 뇌물‧국정원특활비 등 뇌물‧공직임명 대가 뇌물수수 등 혐의
2019년 강원 산지에 43년만의 4월폭설 대관령23.8cm 태백22.5cm
2020년 코로나19 확산방지 위해 사상처음으로 고3 중3만 온라인개학
2021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작 첫 국산전투기 KF-21(보라매) 공개
2021년 성착취 n번방 운영 ‘삿갓’ 문형욱에 징역 34년 선고
기원전 585년 일본 초대 덴노 진무 천황 사망
92년 중국 후한 초의 정치가 원안 작고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로마 황제임을 선언
436년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장군 단도제 작고
491년 로마 제국의 황제 제논 작고
537년 로마의 포위 공격: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1,600명의 병력을 증원받고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동고트 왕국 비티게스 왕의 캠프를 습격함으로써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다.
1024년 교황 베네딕토 8세 작고
1241년 레그니차 전투가 발발
1336년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티무르 출생
1483년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4세 작고
1557년 핀란드의 성직자 미카엘 아그리콜라 작고
1626년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사망
--`아는 것이 힘이다` 와 `네가지 우상`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르네상스 후의 근대철학, 특히 영국 고전경험론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냉정하면서도 유연한 지성을 가진 현실파 인물이었던 그는 1561년 1월 22일 잉글랜드 런던 요크하우스에서 태어나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제임스 1세 치하에서는 사법장관과 기타 요직을 지냈다. 그 후에도 날로 권세가 높아갔으나, 수뢰(收賂)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을 받아 관직과 지위를 박탈당하고 정계에서 실각된 후 여생을 실의 속에 보내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새로운 발견(발명)을 추동하는 대신 기존의 진리를 마냥 다시 찍어냄으로써 판에 박은 대답만 되풀이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신기관(NOVUM ORGANUM)`이 있는데, 이것은 유럽의 고대와 중세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기관(ORGANUM)`의 논리학을 의식해서 붙인 제목이다. 베이컨이 새로 고안해낸 `기관`은 경험을 종합함으로써 거기서 새로운 가설을 빚어내고, 이를 다시 경험 속에서 확인하는 `귀납법`이었다. 그는 이 새로운 기관을 통해 새로운 발견·발명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귀납법을 채택한다고 해서 자연의 진리가 저절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적한 인간의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 네가지 우상으로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있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 뿌리박고 있는 편견이다.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다. 각 개인은 "표면이 고르지 못한 거울"처럼 자연을 그대로 비추지 못한다. 시장의 우상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편견이다. 극장의 우상은 "철학의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방법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생기게 된 우상"이다. 베이컨은 기존의 철학체계들이 극장에서 상연하는 각본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며, 르네상스적 마술이 근대 과학의 공학적 기술로 변화되려 한 전환점이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그는 과학의 진보에 장대한 꿈을 싣고 과학연구의 방법을 제창했지만, 그 방법을 실제로 이루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1626년 3월 기관지염에 걸려 1926년 4월 9일 애런들 백작 저택 근처에서 생을 마감했다
1648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의 잉글랜드 군인, 골웨이 백작 출생
1667년 프랑스 파리의 팔레 로얄 궁에서 첫 미술전람회
1784년 에스파냐의 군인 라파엘 델 리에고 출생
1802년 핀란드의 문헌학자 엘리아스 뢴로트 출생
1821년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출생
1864년 영국 전기공학자 페란티 출생
1865년 미국 남북전쟁 종식(남군 장군 로버트 리, 북군 장군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에 버지니아서 항복)
1889년 러시아 태생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에프렘 짐발리스트 출생
1899년 미국의 항공기 제조 업체 맥도널 더글러스의 공동 창업자 제임스 스미스 맥도넬 출생
1915년 디프테리아균을 발견한 독일 세균학자 뢰플러 사망
1915년 영국.프랑스군 갈보리반도 작전 실패
1918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설계한 우드손 출생
1919년 세계최초 컴퓨터 `에니악`을 개발한 프레스터 에커트 출생
1926년 미국의 출판사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 주식회사의 창업자이자 남성 취향 성인용 잡지 플레이보이(Playboy)의 창간자 휴 헤프너 출생
1927년 최악의 사법살인 사코와 반제티 사형선고
--1920년 4월, 미국 보스턴 근교의 한 제화회사에서 경리직원과 경비가 살해되고 1만6000달러가 털리는 살인강도사건이 발생하자 제화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경찰은 명확한 물적 증거도 없이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고 1차대전 참전을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에 주목, 두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갔다. 전후 불경기와 과격해진 노사분규, 이에따른 사회불안을 과격분자와 공산주의자에게 전가하려는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것이었다.
1921년 7월 14일 두 사람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불공정한 재판에 분노를 표시했다. 파리에서는 미국 대사의 집이 파괴되고 구명운동을 벌이던 데모대에 폭탄이 터져 2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인 아나톨 프랑스와 아인슈타인 등 세계 지성인들도 나서 ‘최악의 사법살인’이라며 항의하자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사형집행을 연기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1927년 4월 9일,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그해 8월 23일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은 두 사람의 무죄가 공식 확인된 것은 1977년 메사추세츠 주지사가 이들의 무고를 인정하면서였다. 둘은 그림과 노래로도 명예가 회복됐다. 화가 벤 샨이 그린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931∼1932)과 미국의 현실참여가수 훌리 니어가 부른 ‘누가 이들을 기억하랴?’가 그것이다.
1936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모리스 아미 작고
1940년 독일군 노르웨이와 덴마크 침공
1945년 독일의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사망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삶의 시작입니다”. 1945년 4월 9일 독일 출신의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이날 교수대에 올라 3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히 행동하는 신앙인이길 바랬다. 그는 20세기 후반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그리고 새로운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준 목자이자 전쟁의 광기에 희생된 어린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순교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교회 재건과정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의 학문적인 분위기의 한 가정에서 태어난 본회퍼는 21세 때인 1927년 ‘성도의 교제’라는 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신학적 천재성을 발휘했다. 신학계에서 처음으로 책임윤리를 설파한 그는 몸소 신앙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교회의 역할을 일깨워줬다.
그러던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후, 유대인들을 겨냥한 박해와 학살이 자행되자 본회퍼는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보고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43년 4월 5일. 본회퍼가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다.
그후 2년 동안의 강제수용소 시절 친구 베트게와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사후 ‘옥중서간’이란 제목으로 출판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과 용기를 줬고 새로운 신학을 만들어내는 단초를 제공했다. 사후 반세기가 넘는 1996년 8월 6일. 베를린의 한 법원이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대한 나치법정의 사형선고를 공식적으로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복권됐다.
1951년 노르웨이의 기상학자.물리학자 비에르크네스 사망
1952년 일본 여객기 추락 - 37명 사망
1953년 폴란드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뵈치에호프스키 사망
1959년 미국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세상떠남(91세),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 중시해 건물 앞면이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통념 깨고 그 방향을 고정시키지않음, 그의 작품 ‘카우프만 가의 저택’(일명 ‘폭포위의 집’)은 최초로 건축과 자연이 한 공간속에 흡수된 예
1959년 NSA가 머큐리 계획 우주 비행사 명단을 발표
1961년 알바니아 국왕 아흐메트 조그 1세 작고
1968년 체코 ‘자유화행동강령’ 채택
1968년 보잉 737이 처녀비행
1970년 폴 매카트니 비틀즈 해체 공식선언
1972년 잔지바르섬에서 키르메 피살
1972년 우간다, 이스라엘과 단교
1973년 네덜란드, 베트남과 국교 수립
1974년 유엔(UN)자원특별총회 개막
1982년 아르헨티나 10만 예비군에 동원령(포크랜드 관련)
1985년 일본 대외시장개방정책 발표
1988년 온두라스 반미시위 격화, 2개도시 비상사태 선포
1988년 쿠웨이트 여객기 납치 사건
1991년 조지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1991년 소련의 그루지아공화국 독립선언
1992년 알바니아 첫 비공산계 대통령 살리 베리샤 피선
1995년 라이베리아에서 무장괴한이 어린이와 여성 62명 무참히 살해
1999년 니제르 군부쿠데타 마이나사라 대통령 피살
1999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방한
2003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미군에게 함락됨
2003년 전직 미국 FBI 요원, 내연의 관계에 있는 이중 스파이에게 국가 기밀정보 누설한 혐의로 체포
--007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현실 세계에서도 벌어졌다.
전직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자신의 정부(情婦)인 중국계 미국 여성에게 국가 기밀 정보를 거꾸로 흘린 사실이 공개됐다. FBI는 지난 9일 제임스 스미스(59)라는 전직 요원이 중국계 이중 스파이인 카트리나 륭(49)에게 민감한 정보를 흘린 혐의로 이들을 체포했다.
중국 스파이들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던 스미스는 1980년대 초 륭을 FBI의 ‘끄나풀’ 로 포섭한 뒤 그녀를 조종해 중국의 정보를 얻어 왔었다. 스미스와 륭은 각자 가정을 꾸미고 살면서 스미스는 정기적으로 륭의 집에서 그녀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눈이 맞아 뜨거운 사랑도 나눴다는 것.
하지만 사랑에 눈이 먼 스미스는 자신의 기밀서류를 그녀에게 보도록 허용했고, 급기야 기밀서류를 그녀의 집에 놔두기도 했다. 륭은 은밀히 국가 기밀 서류를 복사했고, 중국 정부에 이를 넘겨 줘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해왔다. 륭이 체포될 당시 그녀의 집에서 미국의 국가 기밀 서류가 발견되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 사실상 함락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대한 공격을 펼쳐온 미·영 연합군은 전쟁 시작 21일째인 9일(현지 시각) 바그다드 전 지역을 완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해온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은 바그다드가 미군에 함락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후세인 정권의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간 이라크인들과 이스라엘은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아랍인들도 많다.
그러나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거주하는 시아파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함락을 일제히 반겼다. 후세인 정권의 핍박을 피해 미국에 이민한 이라크 동포 1000여명은 9일 디어본 시내에서 이라크 전쟁 지지 시위를 갖고, “마침내 독재자가 무너졌다”면서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연호했다. 한 참석자는 “바스라로 돌아가 조국을 둘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포스트는 사설에서 “오늘은 평화가 승리한 날”이라고 밝혔다
2005년 영국 찰스 왕세자, 카밀라 파커볼스와 재혼
2008년 홍콩의 저비용 항공사인 오아시스 홍콩항공이 파산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서비스팩이 설치되지 않은 윈도우 7에 대한 지원을 중단
2020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무술가 하금명 작고
2020년 영국의 통계학자 하비 골드스타인 작고
2021년 영국의 왕족 에든버러 공작 필립 작고
2022년 영국의 소설가 잭 히긴스 작고
2022년 워너-디스커버리 합병 완료...새 거대 미디어 그룹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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