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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이름이 성공한 인생을 만든다"
오늘의 역사

오늘의 역사 5월 31일

by 귤담 2023. 5. 16.

오늘의 역사 5월 31일

 

 

 

어떤 나라

땅이다가

 

어떤 땅의

슬픔이었다가

더러

대숲 흔들리는 고향으로

돌아온 나.

 

세상의

빛나는 벽 안

나는 거울 속에 숨는다.

 

어느날

거울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나.

 

이 거리 어디라도 날아갈 듯 자유로운

 

너희는

왜 이방인의

먼 눈빛을 지녔느냐.

                       - 이재창 시인의 「잠」 전문, (시조문학 36, 1983 가을호)

 

 

 

“살다가 보면/넘어지지 않을 곳에서/넘어질 때가 있다//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사랑하는 사람을/사랑하지 않기 위해서/떠나보낼 때가 있다//떠나보내지 않을 것을/떠나보내고/어둠 속에 갇혀/짐승스런 시간을/살 때가 있다//살다가 보면”       -이근배 ‘살다가 보면’

 

 

 

*바다의 날, 바다 둘러싼 국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바다자원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인식 확산시키고자 통일신라 때 장보고가 청해진 설치한 날을 바다의 날로 삼음

*세계금연의 날

*카스티야 라만차 데이(Castile–La Mancha Day):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지방

*로얄 브루나이말레이 연대의 기념일: 브루나이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607년 (조선 선조40)임진왜란때 영의정 지낸 유성룡 세상떠남 『징비록』(국보 제132호)

1801년 (순조1)첫 외국인신부 주문모(중국) 한강 새남터에서 처형(신유박해)

1879년 (고종16)프랑스신부 빅토르 마리 도케트를 청나라로 추방함

1884년 (고종21)미국파견사절단 민영익 서광범 등 인천으로 돌아옴

1886년 (고종23)미국감리교 여성선교사 스크랜턴 학교설립, 10월22일 고종이 이화학당이라 이름지어줌

--5월 어느 날, 가마를 탄 한 여성이 하인을 거느리고 벽안(碧眼)의 스크랜턴 부인을 찾았다. 스크랜턴은 미국 세계여성해외선교부(WFMS)가 조선에 파견한 선교사. 1885년 6월에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스크랜턴은 조선 여성을 교육하는 것이 시급함을 깨닫고, 서울 정동(貞洞)에 학교 부지 6100여평을 매입한 뒤 이듬해 2월부터 건물공사를 시작했다. 곧 학생모집에 나섰으나 교육을 받을 여성들은 여전히 집안 깊숙한 곳에서 나오질 않았다.

이런 때 상류계층의 여성이 제발로 찾아왔으니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했다. 고관의 소실로 결혼까지 한, 이름을 알 수 없어 김부인으로 불린 여성은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이 되고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1886년 5월31일, 김부인 한 명 만을 상대로 한 역사적인 첫 수업이 시작됐다.

근대적인 여성교육이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김부인은 불행히도 병이 들어 석 달만에 중도하차 해야했다. 6월 말, 10살 난 꽃님이가 가난으로 딸을 부양할 수 없었던 엄마를 따라 이곳을 찾았고, 곧 4살 난 별단이도 이곳에 보내졌다.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된 김정동(박에스더)이 문을 두드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11월, 학수고대하던 200평 규모의 한식 기와집 교사(校舍)가 완성된 데 이어 이듬해 2월, 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고종황제가 ‘이화학당(梨花學堂)’ 이란 교명(校名)을 하사한 것이다. 정동에 배밭이 많아 ‘이화(梨花)’ 로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화여대는 1935년에 화빈궁(정조의 후궁)의 묘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이전해 ‘신촌시대’ 를 열었다.

1894년 (고종31)동학농민군 전주 점령

1894년 (고종31)최초의 치과병원 남대문에서 개업

1895년 (고종 32년)공문에 국문 또는 국한문혼용령 공포

 

 

1904년 일본 각의, 대한 방침 및 시설 강령 결정

1908년 이화학당 메이퀸 대관식 행사 시작

1908년 의병진압을 위해 일본군 2개 연대가 더 파견됨

1912년 총독부 모든 관리에 무관복장착용 지시

1912년 조선총독부, 연합 운동회 개최 금지

1919년 문창범·남만춘·김철훈 등, 고려공산당(이시파) 조직

1924년 한국인의 일본 도항(渡航) 제한 철폐

1930년 한국독립당 상하이에서 결성

1936년 작곡가,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출생

1937년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 재건 준공

1938년 총독부 각종토목공사에 부인동원령 시달

1938년 〈임시 통화법〉 공포(6.1. 시행), 임시 보조화폐의 소액권 발행

1948년 중앙청회의실에서 제헌국회 개원(6.10. 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희˙김동원).

--5ㆍ10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의 제1과제는 헌법 제정이었다. 이에 초대 국회를 제헌국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 헌정 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권자로서 직접 국민대표를 뽑는 제헌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은 뒤 1948년 5월 31일 역사적인 제헌국회 개원식이 거행됐다.

5ㆍ10선거는 총유권자의 95.5%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 대한민국 수립의지를 증명한 선거로 198명(2년 뒤 제주도서 2명 선출)의 의원이 선출됐다. 초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의석수 200석 가운데 정당별로 무소속 85석,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석, 한국민주당 29석, 대동청년단 12석, 조선민족청년단 6석, 대한노동총연맹 1석, 기타 10석을 차지했다. 초대 의장에는 이승만, 부의장에 신익희, 김동원 의원이 선출되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첫발을 내딛었다.

1948년 서머타임 실시(1시간 빠르게)

1949년 신성모 국방부 장관, 3일이면 북한 공산군 소탕 가능 발언

1952년 전시연합대학 해체

1954년 한국 경제원조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한국재건단과의 협약 조인

1955년 한-미 잉여농산물원조협정 조인

1955년 70여명의 여인 간음한 박인수 검거

--1년간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박인수씨가 1955년 5월31일에 검거됐다. 대학 재학 중 전쟁 발발로 입대했던 훤칠한 미 청년 박인수는 해병대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해군장교구락부(LCI), 국일관, 낙원장 등 고급 댄스 홀을 드나들다 1954년 제대한 이후로도 해군 대위를 사칭, 인기 댄스홀을 휩쓸며 여성 편력을 펼친다.

박인수가 만난 여성들은 대학생이 대부분이었으며 고관, 국회의원 등 상류층 가정 출신도 많았다. 검찰은 박을 혼인빙자 간음죄로 기소했지만 정작 이 죄는 친고죄. 박인수를 고소한 여성은 둘 뿐이었으며, 그나마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두한 여성은 너댓밖에 안됐다. 권순영 판사는 박인수 피고에게 공무원 자격 사칭에 대해서만 2만환의 벌금형을 과했다. 그러나 세간은 떠들썩했고 검찰은 항고했다. 항소심에서 박인수는 징역 1년형을 받았고 대법원 상고가 기각되면서 유죄가 확정됐다.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고의로 여자를 여관에 유인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는 게 유죄 판결 이유였다. 박인수 사건은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던 1950년대 한국의 웃지못할 풍속화다. 자유로워진 성 풍속도, 그러나 여성의 정조와 순결을 강조하던 윤리의 이중 잣대, 미군 문화를 통해 전파된 춤 바람과 댄스홀, 이 모든 새로운 사회문화 코드의 조합이 박인수 사건으로 응축됐다.

1955년 한-미, 미국산 원면·엽연초 구입을 위한 美 잉여농산물 구매협정 조인

1962년 증권파동 일어남, 증권시장에서 약5백억환 결제 불이행

1967년 외환보유고 3억$ 돌파

1971년 동성호 캄차카반도 근해서 소련 경비정에 피납

1972년 문교부 고입체력장제도 실시요강 발표

1972년 시인 김지하,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

1974년 부산지법, 공무집행방해 취객에 사상 처음으로 징역형 선고

1976년 전국에서 첫 반상회

--5월 31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민조직의 최하부단위인 반(班) 구성원들의 월례회인 반상회가 열렸다. 반상회의 주요목적은 주민간의 의사소통과 국민화합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매달 말일을 정기반상일로 정한 후 처음 열린 반상회는 남자보다 여자가, 청장년보다는 노인들이 많았고 주민요망사항 토론보다는 공지사항 전달이 많은 모임이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 전국 25만5천개 반에서 일제히 열린 이 반상회는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를 토론함으로써 행정기관과 주민간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빠른 곳은 저녁7시, 늦은 곳은 9시에 회의가 시작됐다. 각반이 반장과 구청에서 파견된 담당관이 참석한 이날 반상회는 출석점검이 끝나고 공지사항 전달 때에는 지리함을 느끼는 듯 조는 이들까지 있었으나 `요망사항 말하기`에 이르자 회의분위기는 활기를 띠었었다.

반상회는 1917년 일본이 한국국민 통제와 지배체제의 유지 강화를 위해서 열린 것이 기원이었고 1976년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이다. 처음에는 매달말일에 개최되던 반상회 일자는 후에 25일로 고정됐다.

1979년 고리원전 저압터빈의 유기관 연결부분 고장으로 가동중지

1980년 신군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의장 최규하 상임위원장 전두환)

1980년 국가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국보위) 설치 : 민주화 운동 탄압 공무원 숙정, 언론 통폐합 등을 단행.

--5월 31일 유신체제 붕괴로 생긴 공백기를 틈타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세력을 키워온 신군부세력이 국정전반에 대한 실권 장악을 위해, 형식상 대통령이 내각과 계엄당국간의 협조체제를 긴밀화 하기 위해 대통령자문보좌기구인 국보위를 발족시켰다.

최규하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고 주요각료 10명, 주요군지휘관 14명으로 구성된 국보위는 위임사항을 심의, 조사하기 위해서 전두환 위원(중앙정보부장서리겸 보안사령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상임위가 설치되어 거의 전권을 장악, 권력의 핵으로 부각됐다. 7월에 들어서선 장관 1명을 포함한 고급공무원 2백32명을 숙청하는 등 5천명에 가까운 사상최대의 공무원숙청을 단행했고, 정화의 물결은 국영기업체-금융계-경제단체로 파급됐다. 그리고 폭력배-불량배소탕 등 과감한 사회악 제거작업이 뒤따랐다.

그러나 사회에 공포분위기 조성과 전두환 일파의 집권 기반을 다져주었던 국보위는 10월 29일 제5공화국 헌법 확정과 함께 발족한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출범으로 해체됐다.

1980년 계엄 사령부, ‘광주 사태’로 민간인 144명·군인 22명·경찰관 4명 등 170명 사망 발표

1981년 세계궁도대회 우승

1982년 대한민국 첫 인터넷 개설

1986년 정부, 부실기업 2차정리 단행. 301개 품목 수입자유화 결정(수입자유화율 91%)

1986년 김일성, 후계자 문제 해결을 언급.

1987년 김민기 등, 사전검열 통과한 민중가요 9곡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 앨범 발간

1988년 SLOOC, 캐나다 국영방송과 480만 달러에 88올림픽 방영권 계약체결

1988년 국회본회의, 국회법 개정특위 구성 결의안 통과

1989년 노태우 대통령ㆍ김영삼 민주당 총재, 청와대 회담에서 초당적 북방외교에 합의

1989년 신문 잡지 발행부수 公査기구인 한국ABC협회 창립. 회장 서정우

--신문-잡지 발행부수 공사기구인 ABC가 한국에서도 탄생했다. 사단법인 한국ABC협회는 1989년 5월 31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그간 언론계 광고계의 과제이던 공사단체를 가동시켰다. 외국에 비하면 크게 늦었다. 초대 위원장은 서정우 연세대 교수가 맡았고 1995년부터 언론인 조용중씨가 2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93년 7월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평화신문 인천일보가 처음 ABC공사를 신청했다. 이어 8월에 중부일보, 10월에 서울신문 한국교육신문이 부수 내역을 협회에 보고, 참여사는 7개가 됐다. 그러나 이들 신문의 공사 결과를 심의할 인증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에 유료부수 등 공사 규정이 일부 개정되는 바람에 공사 보고서가 제대로 발간되지 못했다.

첫 ABC 보고서는 조선일보가 발행-유료부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공표했다. 이후 일부 신문사가 ABC공사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1998년부터 일간지는 조선일보 만이 ABC공사를 받고 있다.

1989년 건설부는 아파트의 높이제한을 도시계획도로 폭의 1.5배에서 고층아파트의 경우 1.8배로 늘리기로

1990년 한ㆍ일 첫 공정거래회의, 한일간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역외적용원칙」을 확립키로

1990년 한강변에서 최지원(26) 남편의 전처소생인 呂모군(8. 국교 2년)을 강물에 밀어넣어 살해 미수

1990년 일본이 제출을 거부해 온 한국인 강제징용자 명부가 한국문서보관서 부산지소에 보관돼 있음이 확인

1990년 고르바초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서 정상회담 개최. 한·소 양국 동시 발표

1990년 북한 군축안 제안, 내용=협상타결 뒤 3-4년간 3단계 군축 통해 남북한병력10만으로 감축

1991년 일본 共同통신, 43년3월현재 일본에 강제 연행된 한국인 숫자는 약28만3000명, 극비문서를 인용보도

1992년 교육부, 대학원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우수 대학을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육성키로

1993년 박태중 포철회장 비리고발-계열사로부터 부당하게 56억 수수

1993년 국세청, 포철(박태중 회장) 세무조사 결과 본사 및 계열사 730억원의 세금탈루 사실 적발, 추징 발표.

1993년 15개 시·도 교육감, 자발적 찬조금 등을 골자로 한 교육개선 현안 36개항 교육부에 건의.

1993년 이종태 성균관대 교수팀 수소자동차 국내 첫개발, 물분해로 추출해 공해없이 시속60km

1996년 북한 과학자 정갑렬-작가 장해성씨 한국으로 망명

--5월 7일 중국 북경 주재 일본대사관을 거쳐 한국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과학원 산하 음향기기연구소장 정갑렬씨(45)와 별도의 망명 절차를 밟은 북한 중앙방송 소속 방송작가 장해성씨(52)가 1996년 5월 31일 낮 홍콩을 출발 서울에 도착했다.

작가인 장씨는 지난 1월 한-중 국경을 넘어 북한을 탈출 중국 내에서 머물다가 5월 14일 홍콩에 도착, 한국 공관에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정씨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발명전시회에 참가한 뒤 귀로에 북경에 머무는 동안 5월 7일 북경 주재 일본대사관을 거쳐 한국 측과 연결된 후 홍콩으로 옮겨가 한국으로의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망명한 두 사람 모두 북한 최고 대학인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계층이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발명 및 신기술 전람회에 참석했다가 귀국 도중 망명한 정갑렬씨는 북한 과학원 산하 메아리사 음향연구소 소장이며 장해성씨는 방송작가로 북한 중앙방송 문예총국 라디오 담당이다. 정씨는 8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했으며 망명 동기는 북한에서 과학자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 장씨는 김정일 우상화 작업과정에서 김정일의 출생지가 북한이 아니고 소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친구에게 말한 것이 문제가 돼 처벌을 받게 돼 북한을 탈출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6년 국제축구연맹 집행위 2002년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안 만장일치 통과

--국제축구연맹(FIFA)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FIFA본부에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02년의 제17회 월드컵을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 개최키로 결정했다.

주앙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회장은 이날 밤 11시 취리히 돌더 그랜드호텔서 요한슨 유럽축구연맹회장 및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등 부회장단,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사무총장, 나가누마 겐 일본축구협회회장 등 FIFA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집행위원회는 한일공동개최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표결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고 발표했다.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공동개최 대회로 기록될 이날 결정으로 한일 양국은 경쟁자 입장에서 동반자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한국은 월드컵을 향한 국민적 열기와 정부 유치단의 추진력으로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킴으로써 공동개최를 유도하는 외교적 성과를 얻어냈다.

1996년 제1회 바다의날

1998년 북미 친선남자농구경기 평양서 개최

1999년 한국-몽골 정상회담, 김대중대통령 첫 국빈 방문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 울란바토르 정부종합청사에서 1999년 5월 31일 바가반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1990년 수교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몽골을 국빈 방문한 김 대통령은 청사 3층에서 단독회담과 확대회담 순으로 모두 1시간30분 가량 양국 관심사를 협의했다. 대통령은 회담에서 대북 포용정책과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 설명했고, 바가반디 대통령은 충분한 이해와 지지의 뜻을 표명했다.

양국 정상은 회담후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양국간 형사사법공조조약, 범죄인인도조약 등 조약 서명식을 참관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21세기 새로운 차원의 상호보완적 협력관계를 위한 노력을 골자로 한 11개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2000년 제3차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이회창 총재 재선

--한나라당은 3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제3차 전당대회를 열고 오는 2002년 5월까지 앞으로 2년간 당을 이끌 총재로 이회창 총재를 다시 선출했다.

이 총재는 전체 대의원 7684명 중 7133명이 참여한 총재경선 투표에서 4717표(66.3%)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다음으로 김덕룡 전 부총재가 1473표(20.7%), 강삼재 의원이 663표(9.3%), 손학규 의원은 257표(3.6%)를 얻었고 무효표는 23표였다.

2002년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개최(한국과 일본)한 제17회 FIFA 월드컵 열림,

--슬로건=‘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10곳 총20개도시에서 31일간 64경기 치름

지구촌 최대의 축제, 21세기 첫 축구제전인 2002 한일월드컵 축구대회가 2002년 5월 31일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17회를 맞은 이번 월드컵은 오후 8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지난 1998년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시작으로 킥오프, 31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2년여동안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친 본선 진출 32개국은 한국과 일본 20개 도시의 경기장에서 8개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전을 벌였다. 한일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동양에서 열렸을 뿐만 아니라 2개국이 공동개최하는 첫 대회였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은 이변의 전주곡이었다. FIFA 랭킹 42위 세네갈이 1위인 프랑스를 1대0으로 침몰시켰기 때문이다.

한국은 종합전적 3승2무2패로 4위에 올라 전국민을 흥분시켰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개막식은 ‘동방으로부터(From the East)’라는 주제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고, 상생의 정신을 표현해 전세계 시청자들의 갈채를 받았다

2004년 가나무역 김선일씨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랍

--이라크인 직원 1명과 미군에 납품할 물건을 싣고 바그다드 서쪽 200㎞ 지점의 리브지(RIBGEE) 캠프를 떠나 바그다드로 귀환하던 중 팔루자 인근에서 피랍되었다

김선일은 이후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 등 정부에 피랍 사실을 알리지 않고 미군 등에 협조를 요청한 뒤 독자적으로 납치단체와 협상을 벌여왔다.

김선일은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카타르 주재 한국대사관에 피랍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

6월20일 밤 11시쯤(한국시간 21일 오전 5시) 알 자지라 방송이 김씨의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한 뒤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21일 새벽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사관측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모술에 출장중인 김선일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납치된 김선일의 신변과 최근 행적 등을 확인했다.

한편 납치단체가 김씨의 살해 시한으로 밝힌 21일 일몰 시점은 이슬람의 마지막 일일 기도시간인 오후 6시42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이 시점은 22일 오전 0시42분이다.

2004년 6월 22일 밤 10시 20분경 바그다드에서 팔루자 방향으로 약 35km 지점에서 참수된 동양인의 시신이 미군에 의해 최초 발견되었고, 6월 23일 새벽 0시 45분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김선일의 사망 사실을 공식 확인하여 외교통상부에 보고하였다. 김선일의 유해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6월 26일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출범

2006년 제4회 동시지방선거, 집권 열린우리당 참패

2007년 가수 박경원 세상떠남 ‘만리포 사랑’ ‘이별의 인천항’

2010년 경북 군위 지보사 문수 스님 4대강사업반대와 환경정화의 염원 품고 소신공양

--“이명박 정권은 4대강사업을 즉각 중지, 폐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유서 “활활 타오르는 맹화도/그대의 마음은 두렵지 않나니...서러운 사람들의 가슴을 온통 쓸어안고서...들불같이 붉고 빛나게 타올라/우리들의 어둔 밤하늘에/별빛이 되신 성스러운 스님/문수스님!”-원경 스님

2014년 가수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 사상 최초로 20억뷰 돌파

2014년 소프라노 황수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2015년 대법원 1차 인민혁명당사건 재심에서 피해자 9명 50년만에 무죄 확정

2017년 수도권에서 지상파 UHD 방송이 개시

2017년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가 서울교통공사로 통합 출범

2017년 서울 코엑스몰에 별마당도서관 개관

2017년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자유한국당 불참속에 국회 통과(재석188 찬성164 반대20 무효2 기권2)

2017년 국정농단게이트 관련 최순실의 딸 정유라 덴마크로부터 강제송환

2017년 교육부 국정역사교과서 공식폐기

2018년 유튜브 채널 ‘와썹맨(Wassup Man)' 개설, 4달만에 구독130만명 돌파

2021년 유통기한 지나도 섭취 가능한 ’소비기한‘ 도입 추진

2022년 대북조치로 손해 본 개성공단업체...헌재, “보상 입버 의무 없다”

2022년 손실보전금 지급 첫날 3시간 반만에 60만건 신청

 

 

 

1162년 칭기즈 칸, 몽골 제국 초대 대칸 출생.

1469년 포르투갈왕 마누엘 1세 출생.

1669년 영국일기작가 새뮤얼 패피스의 일기 끝남,

--1660년초에 시작된 그의 일기는 이날 그가 시력을 잃으면서 끝,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일기를 썼기때문에 그가 죽고 122년이 지나서야 해독됨, 일기에 기록된 140만개의 단어는 역사학자 고전학자 일반독자들에게 17세기 영국생활에 대한 중요한 자료 제공 “사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쾌락에 더 많이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재산을 모으는 동안 즐기는 것을 잊으며, 재산을 모을 때까지 그것을 미루지만, 그 때는 이미 즐기기에 너무 늦다.”

1809년 교향곡의 아버지 오스트리아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세상떠남(77세)

1819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시인 휘트먼 출생

1832년 프랑스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 사망

1857년 교황 비오 11세, 259대 로마 교황 출생.

1887년 프랑스의 외교관 겸 시인 생 종 페르스 출생(노벨문학상 수상자)

189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 공사 시작

1902년 보어전쟁(영국-보어인) 끝남, 프레트리아조약 조인

--5월 31일 트랜스발국이 영국에 항복함으로 3년에 걸친 보어전쟁이 막을 내렸다. 전쟁결과 보어군은 총병력 7만여명 가운데 7천여명이 전사했고, 집단수용소에 수용돼 있던 2만3천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영국도 불명예스러웠다. 인구 50만명에 군병력 7만여명 뿐인 보어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영국이 동원한 군병력은 45만명이었다. 이 중 5천7백여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으로 목숨을 잃은 수만 해도 1만 6천여명에 달했다.

고도로 훈련되고 규율이 엄격한 대영제국 군대가 엉성하기 그지없는 보어인 민병대에 이처럼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영국 본토의 여론을 들끓게 했다.

영국 정부를 당혹스럽게 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잔인성에 대해 세계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점이었다. 50여만명 뿐인 트랜스발을 점령하기 위해 영국은 군병력 45만명을 동원했고, 전쟁 막바지에는 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해 보어인들의 전답과 가옥을 불사르고, 21만명의 비전투원을 강제적으로 집단수용해 이들 중 2만3천여명이 수용소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19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으로부터 독립

1911년 198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알레 출생

1916년 유틀랜드해전 영국 제해권 장악

1921년 미국 사상최악의 인종폭력사건 털사인종학살 벌어짐, 오클라호마 주 털사 그린우드에서 백인폭도들이 흑인 수백명 살해, 100년만인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추모의 날 선포, 인종 불평등 해소 약속

1931년 미국의 물리학자 슈리퍼 출생 - BCS 이론으로 노벨물리학상 수상

1933년 일본 관동군 대표와 중국군 대표 사이에 당고정전협정 성립

1935년 인도 케타 지방 진도7.5 지진 사망3만명

193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20세기 폭스가 설립

1945년 타이베이 대공습.

1946년 독일의 영화감독 파스빈더 출생

1952년 동독 동-서베를린 경계선봉쇄

1959년 싱가포르 제1회 총선거, 6.3 자치국 독립선언, 6.5 리콴유(이광요) 내각 성립

1961년 남아프리카연방, 영국 자치령에서 독립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립

1961년 영화배우 게리 쿠퍼 사망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두 번 씩이나 수상한 미국 영화배우 게리 쿠퍼가 1961년 5월 31일 사망했다. 쿠퍼는 1901년 미국 몬타나주에서 출생했다. 대학을 중퇴한 뒤 만화가로 활약하다가 쿠퍼가 영화계에 데뷔한 것은 24세 때인 1935년이었다.

장신에 미남이었으나 특징이 없다는 이유로 5년 이상 엑스트라로 전전하던 그를 스타덤에 올라서게 한 영화는 `모로코`와 헤밍웨이 원작 `무기여 잘 있거라`였다. 출세작으로는 1930년 디트리히트와 공연한 `몽고`였으며 주요작품으로는 잉그리트 버그만과 함께 출연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백주의 결투`가 있다.

1962년 유대인 수백만명을 죽음의 학살수용소 이송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 사형집행

--전직 나치스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2년 5월 31일 이스라엘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이히만은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1906년생인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살고 있던 유태인의 체포-강제이주-살해를 계획하고 지휘했다.

독일이 패전한 뒤 가족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그곳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 시민권을 얻은 뒤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은신해 있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 모사드의 끈질긴 추적끝에 1960년 5월에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돼 이스라엘로 비밀리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모사드의 아이히만 납치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1950년 법률이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 등을 둘러싼 이스라엘 검사와 독일 변호사간의 법정공방이 뜨거웠으나 이스라엘 법정은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0년 제9회 월드컵 멕시코서 개막

1970년 북아메리카 프로 아이스 하키 골키퍼 테리 소척 사망

1970년 페루 강진으로 6만6천명 사망

1983년 우노 소스케 일본총리 뽑힘

1985년 제1회 동경국제영화제 개막

1986년 미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레인워터 작고.

1998년 미국 플로리다 북부 큰 산불 276억$ 피해

2005년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정적 제보자로 확인

2005년 마크 펠트가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2009년 타이타닉 마지막 생존자 97세 밀비나 딘 사망

--비운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생존자 밀비나 딘(Dean·97)이 2009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1912년 2월 12일생인 밀비나는 살아남은 706명 중 최연소 생존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모, 오빠(당시 2세)와 함께 그해 4월 14일 타이타닉에 올랐다. 부친 버트람 딘(당시 27세)은 운영하던 선술집을 팔고 새 삶을 찾겠다며 가족을 데리고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밀비나의 가족은 원래 타이타닉 승객이 아니었다. 다른 배를 예약했으나 파업으로 예약이 갑자기 취소돼 타이타닉 표를 받았다. 네 사람은 3등칸에 함께 탔다. 딘은 2002년 인터뷰에서 “가족을 살린 것은 아버지였다고 모친에게 들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타이타닉이 가라앉을 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신속하게 대피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부친은 가족을 구명보트에 태웠지만 자신은 타이타닉과 함께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밀비나는 8세 때 처음으로 모친에게 사고 소식을 들었다. 모친은 사고 당시 기억 때문에 날마다 두통을 앓았다. 모친은 1975년 95세로, 오빠는 1992년 81세로 각각 사망했다.

밀비나는 1997년 ‘타이타닉’ 시사회에도 초대받았으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상상으로만 남겨두고 싶다”면서 끝까지 보지 않았다.

2010년 시민운동가 600명이 봉쇄된 가자지구에 구호품 싣고가던 구호선이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게 새벽기습당해 10명 목숨잃음

2014년 중국 윈난성 44.5℃ 기상관측사상 최고온도

2017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교공관 밀집지역 폭탄1,500kg 실린 트럭폭발 사상150명

2020년 불가리아의 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 작고.

2021년 중국 시각장애인,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아시아 최초

2021년 베트남서 냉동고에 태아 시신 1천여구가...높은 낙태율의 그늘

2021년 영국 총리, 23세 연하 약혼녀와 기습결혼...현직총리론 199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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