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월 25일
*3월25일 오늘은 노예제와 대서양노예무역희생자 국제추모의 날 ;
미래세대에게 대서양노예무역의 원인 결과 교훈을 가르치고 인종차별과 편견의 위험 전달하기 위한 교육기관, 시민단체 등의 설립 촉진하고자 2007년 유엔 제정
*3월25일 오늘은 억류되고 행방불명된 활동가를 위한 국제연대의 날 ;
비정부기구(NGO)·언론 활동가들, 유엔활동가들과 평화유지군을 보호하고자 제정, 오늘로 한 건 유엔 팔레스타인난민 구호사업국(UNRWA)의 저널리스트 알렉 콜릿(Alec Collet)이 1985년 오늘 무장강도에게 납치되었기 때문(2009년 레바논 베카 계곡에서 시신 발견)
*그리스 : 독립기념일
*벨라루스 : 자유의 날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 로마 가톨릭교회
1102년 [음]숙종(肅宗) 7년, 남경(南京)을 산과 강의 형세에 따라 설계함
1117년 [음]예종(睿宗) 12년, 금에서 화친을 요청함
1127년 [음]인종(仁宗) 5년, 척준경(拓俊京과 그 일당을 유배보냄.
척준경(拓俊京)을 암타도(嵒墮島)로, 최식(崔湜)을 초도(草島)로 유배 보냈으며, 상주목부사(尙州牧副使) 이후진(李侯進), 귀주사(龜州使) 소억(邵億), 낭장(郎將) 정유황(鄭惟晃), 서재장판관(西材場判官) 윤한(尹翰) 등을 먼 지방으로 유배 보냈다.
1129년 [음]인종(仁宗) 7년, 왕이 국학(國學)을 시찰하고 석전(釋奠)을 지냄
1342년 [음]충혜왕(후)(忠惠王(後)) 3년, 왕이 베 2만 필 등으로 유주(幽州)·연주(燕州)에서 교역하게 함
1415년 [음]태종 15년, 공안부(恭安府) 등의 직제와 일부 행정 구역을 고침
1467년 [음]세조 13년, 잡색군(雜色軍, 조선 전기 주로 내륙 지역을 지키던 군대)을 설치함
1496년 [윤]연산 2년, 흙비가 내림
1503년 [음]연산 9년, 삼포 거주 왜인 수가 증가하여 2,000여 명에 이름
1504년 [음]연산 10년, 폐비 윤씨(성종의 비, 연산군의 생모)를 제헌 왕후로 추존함
1530년 [음]중종 25년, 2품 이상 관원이 부족할 경우 강원·황해 관찰사에 통정대부를 차임하게 함
1704년 (조선 숙종30)한양도성 수축공사 시작
1725년 [음]영조 1년, 헌납 정택하가 시비(是非)의 구별 없는 탕평을 비판함
1728년 [음]태인 현감 박필현이 반란을 꾀함
1728년 [음]영조 4년, 이인좌의 난에 관련된 이사필을 처형함
1731년 [음]영조 7년, 공사천의 종부·종모법을 정하도록 함
1732년 [음]영조 8년, 육진(六鎭) 병사에게 조총(鳥銃) 연습을 실시함
1734년 [음]영조 10년,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을 관서에 반포하여 유교를 권장함
1796년 [음]정조 20년, 흰 무지개가 해를 관통하는 재변이 일어남
1811년 [음]순조 11년, 대신의 행로에 차사원(差使員)을 법식대로 대령하게 함
1816년 [음]순조 16년, 황해도 수해 피해자의 세금을 탕감하여 줌
1825년 [음]순조 25년, 금위영(禁衛營)에서 새로 주조한 돈을 4월부터 사용하게 함
1835년 [음]헌종 1년, 산릉(山陵) 역사로 인해 교하군(交河郡)의 결전·군전을 탕감함
1837년 [음]헌종 3년, 영남에서 여제(厲祭)를 지내게 함
1842년 [음]헌종 8년, 묵혔다가 다시 경작하는 경기 지역의 밭에 5년간 세를 면제해 줌
1842년 [음]헌종 8년, 강릉의 대동 면세포(大同免稅布)를 3년간 돈으로 내게 함
1854년 [음]철종 5년, 수원·광주 유수(留守)는 원임 대신도 임명할 수 있게 함
1859년 [음]철종 10년, 40세 이하의 문관에게 매달 한 번 시험을 시행하게 함
1864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이승훈 출생
1869년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길선주 출생
1871년 [음]군포제 폐지, 호포제 실시
1874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 출생
1881년 이만손 등 만인소 상소
1895년 [음]〈재판소 구성법〉 공포, 행정과 사법 분리
1895년 〈학부 관제〉 공포
1895년 을미개혁 추진
을미개혁은 을미사변(1895.10.8) 직후 새로 입각한 김홍집내각에 의해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으로 1894년(고종 31) 7월부터 1896년 2월초까지 약 19개월 동안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광의(廣義)의 갑오개혁이라고 한다. 이 중 제3차 갑오의 개혁은 1895년 8월 하순부터 1896년 2월 초순까지 추진된 개혁을 가리킨다.
그런데 제3차 갑오의 개혁기간 중 을미사변이 발생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내각의 교체가 있다. 이에 논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을미사변 직후 새로 개편된 김홍집내각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을 별도로 구분하여 을미개혁으로도 부른다.
을미개혁은 전년도에 시작된 갑오개혁의 연장으로서, 긴 안목에서 바라볼 때 근대화에 중요한 관건을 이루는 내용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하겠다.
1905년 황제, 러시아정부에 밀서. 이용익, 보성학교 설립 (고려대학).
1907년 나철이 이끄는 5적 암살단이 을사5적을 습격함
1908년 미국의 친일 정치인 더럼 스티븐스 사망
1908년 창경원 동물원과 식물원 준공
1912년 일제, 〈경찰범 처벌 규칙〉 공포
1915년 조선공립소학교 규칙개정 공포 : 교육과정·교과서·교사를 통제
1924년 친일 단체 국민협회·유민회·소작인 상조회·조선 경제회 등 간부, 각파 유지 연맹 조직
1926년 항일투사 박열, 사형 선고
1926년 경성도서관이 경성부에 매각
1928년 김구 안창호 등 중국 상하이에서 한국독립당 결성
1929년 경성제대(서울대 전신) 제1회 졸업식
1935년 일제, 『고종실록』·『순종실록』 편찬 완료
1940년 임시정부, 건국강령 제정
1941년 조선교육령 개정,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
1946년 해방후 첫 경평(서울-평양)축구전 서울운동장에서 열림
1946년 제1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열림
1948년 문교부, 초·중등학교 교과서 47만부 배부
1949년 장면 초대 주미대사 취임
장면(張勉) 초대 주미대사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함으로써 한미 양국의 대등한 동반자 관계가 시작됐다. 장면은 주로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막 건국된 대한민국을 세계속에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으로서 우리나라 외교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이다.
그의 첫 외교활동은 1948년 9월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총회에 수석 대표로 파견되면서 시작됐다. 각국 대표를 상대로 한 3개월간의 노력은 마침내 대한민국이 유엔의 승인(12월12일)을 받는 결실을 맺도록 한다. 장면은 그해 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을 승인(1949년1월1일)한 미국과 양국간의 현안을 논의하던 중 1월5일 주미대사 발령 소식을 접한다. 그는 곧 일제 때 임시정부의 구미위원회가 들어있던 빌딩을 임시 청사로 정한 뒤 1시간 당 5달러의 렌트카(곧 ‘뷰익’을 구입)를 빌려타고 각국 대사를 만나 신생국의 존재를 알려나갔다.
장면의 활약상은 6ㆍ25때 두드러진다. 6월24일 오후 5시경(미국 시각)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쟁소식을 전해들은 장면은 즉각 미 국무성으로 달려가 유엔 안보리 소집을 협의한다. 25일과 27일 유엔 안보리가 소집되자 장면은 북한의 즉각철수와 군사행동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라디도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미국인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1949년 중국, 북경으로 도읍 옮김
1951년 국군, 동해안 38선 돌파
1952년 일본 정부가 보관 중인 강제 징용 후 사망한 한국인 유골 송환 요구
1954년 제1회 학·예술원회원 선거, 전국 14개소에서 실시(학술원 50명 예술원 25명)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설치
1960년 검찰, 마산 3·15 부정 선거 시위 당시 발포한 경찰관 5명 구속
1964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 전국으로 확산
1968년 주한미군 팬텀기대대 창설
1969년 나라 처음으로 카톨릭의대서 콩팥이식 수술 성공
1970년 한국기원 창립
1974년 경제기획원, 1973년도 외자 도입 총액은 8억 5,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다고 집계
1976년 재일동포 모국방문 추진위원회 발족
1980년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와 조사정책자문위 설치 발표
1981년 3.1운동 민족대표33인의 마지막 생존자 이갑성 세상떠남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78.4% 민정당90석 민한당57석 국민당18석 민권당2석 신정당2석 민사당2석 민농당1석 안민당1석 무소속11석
1981년 내무부, 연좌제 폐지.
1981년 3월 25일부터 연좌제가 폐지됐다. 내무부는 새 헌법 규정에 따라 8.15직후의 혼란과 6.25 등 특수한 정치상황아래 발생한 신원특이자들에 대한 기록을 일제히 정리했으며, 형 실효에 관한 법률시행에 따라 전과기록도 정리, 말소해야할 전과자의 기록을 모두 말소했다고 발표했다.
신원특이자 기록정리작업에서는 월북자나 반국가사건관련 당사자의 일부 중요기록만을 선별 정리하고, 당사자 이외의 직계비속, 형제자매, 배우자, 부모를 비롯한 모든 연고자의 기록은 완전히 정리하여 이들이 신원조사과정에서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했다.
이번 정리로 과거와 같이 반국가사건 등에 관련이 있었던 연고자는 앞으로 해외여행, 취업 및 공무원 국영기업체임직원으로 임용되려 할 경우 아무런 불이익처분을 받지않게 됐으며 신원조회처리기간도 크게 단축되게 됐다. 연좌제 폐지 및 전과말소에 관한 이같은 조치는 1980년 8월 그 기본방향이 마련되었으며, 새 헌법과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그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었다.
치안본부 관계자는 이 조치에 따라 본가는 물론 처가쪽의 그 어느 누구가 부역 등 반국가 행위를 한 일이 있어도 신원조사과정에서 아무런 차별취급을 받지 않으며 또 신원조사과정에서 적-부적판정을 보유하는 일도 없게 돼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고 밝혔다
1985년 한국, 남북경제회담을 4/18 판문점서, 적십자 회담을 5월14∼17일 서울서 열자고 북한측에 제의
1985년 국제 사의총회 개막(서울)
1985년 중공, 한국정부에 영해침범 사과각서 전달
1986년 〈동아일보〉 시사만화 「나대로 선생」의 이홍우 화백,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 풍자로 보안사에 연행
1987년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 정국 주도권 부여
1987년 국사교육심의회, 국사교과서개편시안 발표
1988년 안양시 비산동 무허가 그린힐 섬유공장 화재, 잠자던 여성근로자 19명 사망
1988년 특별소비세 인하 따라 VCR·피아노·승용차 등 22개 공산품 시판가격 일제 인하
1989년 전민련고문 문익환 목사 평양방문 김일성 면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초청으로 침체 상태의 남북통일협상 및 민간차원의 접촉 활성화 위해 유원호 정경모와 함께 평양방문,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문 목사는 남북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 군사문제 뿐 아니라 교류문제도 해결하여야 하며 연방제안에 대해서는 두 지역 간의 현실적 차이를 고려해 연방국가의 단계적 창설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의, 정부는 전민련 주요간부들 조사하고 고은 이재오 구속 공안정국조성, 문 목사는 지령 수수 및 잠입죄로 다섯번째 구속 징역7년 언도
1989년 정부는 91년까지 농축산물 268품목을 개방 하는 개방예시계획 최종안을 마련
1989년 휘발유값 7.2% 인하
1989년 한국은행, 88년도 1인당 GNP 4,040 달러, GNP성장률 12.2%로 잠정 집계
1989년 삼환그룹, 소련에 아파트 1천500가구와 냉동공장건축용 기자재공장을 건설키로 소련과 합의
1989년 문익환 목사,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북한방문. 유원호 정경모 씨도 동행.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인 문익환 목사가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초청으로 1989년 3월 25일 평양을 방문했다. 문목사의 방북에는 재일동포 정경모씨가 동행했으며 일본과 중국을 경유했다. 문목사는 평양도착 성명을 통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조국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평양에 왔다고 밝혔다.
문목사는 27일 다른 행로로 북한에 간 소설가 황석영씨와 정경모씨와 함께 김일성 주석을 면담했다. 4월 2일에는 평양에서 문목사와 북측의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의 공동명의로 ‘4.2 남북공동성명서’가 발표됐다. 문목사는 열흘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4월 3일 북한을 떠나 중국과 일본을 경유해 4월 13일 귀국했다.
정부는 당국과의 사전협의 및 허가 없이 평양을 방문한 문목사의 행위가 명백한 실정법위반이라고 규정, 귀국하자마자 구속했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그의 행동을 ‘감상주의적,이상주의적’으로 규정, 7년 징역형을 확정했으나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로 1990년 10월 20일 1년6개월여 만에 형집행 정지로 석방했다.
문익환 목사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에 김대중, 이문영씨 등과 함께 구속돼 20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1977년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 뒤에도 국민연합선언서사건(1978년), 내란예비음모죄(1980년), 집시법위반(1986년), 국가보안법위반(1989년)등 모두 6차례에 걸쳐 10여년간 영어의 생활을 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채 반정부 활동을 계속해왔다. 1994년 1월 18일 별세했다.
1990년 KAL기 모스크바 첫 정기취항
1991년 리스카시 유엔군사령관, 황원탁 육군소장을 제57대 유엔군측 군사정 전위 수석대표로 임명
1991년 남북단일팀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참가
1992년 14대 총선,민자당 116석 -민주당 75석 새로 창당한 국민당은 지역구 24석, 무소속은 21석 차지.
1992년 김포-강화 지구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출마한 김두섭씨(62)는 9회째 출마끝에 당선, 8전9기를 기록.
1993년 한국은행, 92년도 경제성장 80년 이후 12년 만에 최저인 4.7%라고 밝혀.
1993년 서울시, 92년말 현재 서울시에 주민등록을 둔 사람은 1천96만 9천862명이라고 밝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일본 국회 양원 합동회의 연설
1994년 정부,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최종협상 에서 미국 등의 압력으로 추가로 개방키로
1994년 한국은행, 93년 국민총생산은 263조9천억원(전년대비 5.6% 증가)1인당 국민소득 7천466달러 발표
1995년 경수로 북-미 전문가회담(베를린 -3.27까지), 한국형 놓고 의견대립 결렬
1997년 김영삼 대통령, 뉴트 깅리치 미국 하원의장을 비롯한 하원의원단 만나
2000년 프로레슬러 김일, 공식 은퇴 선언
2002년 5개 발전회사, 복귀 불응 한국산업발전노조 조합원 3,912명 해고 절차에 착수
2002년 정부, 교육정보시스템 구축 추진 발표
2003년 소설가 이문구씨 별세.
한국말의 말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표현한 소설가 중 한사람으로 꼽혀왔던 이문구씨가 2003년 3월 25일 타계했다. 충남 보령 출생인 이씨는 ‘관촌수필’ ‘우리동네’ ‘산넘어 남촌’ 등을 통해 충청도 고유의 토속어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하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었다.
2006년 대구 ‘개구리 소년’ 5명 실종·사망 사건, 공소시효 만료
2007년 박태환 제12회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남자400m 우승
2009년 이미자, 가수 최초로 은관문화훈장 수상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3월 25일 청와대에서 이종환(85) 삼영화학그룹 회장과 가수 이미자(67)씨에게 각각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00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한 뒤 자택을 포함, 50여년간 기업활동으로 모은 재산 6000억원을 장학사업 등에 기부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이미자씨는 지난 50년간 600여장의 음반과 2100여곡의 가요를 발표해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다.
이날 훈장 수여식에는 이종환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 회장과 부인 신명덕씨, 며느리 양문회씨, 가수 이미자와 남편 김창수씨,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 이동관 대변인이 참석했다.
이미자씨는 1958년 여고 3학년 때 국내 TV콩쿠르 ‘예능로타리’에서 가요부문 1위를 차지한 후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가요계에 데뷔해 1964년 ‘동백아가씨’로 국민들에 크게 알려졌다.
국민 애창곡인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지난 반세기 동안 600여장의 음반과 2100곡이 넘는 노래를 발표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미자씨는 1999년에 3등급인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동안 대중가수 중에서는 이씨를 포함해 김정구, 백년설, 조용필, 남진 등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대중가수가 2등급 이상의 훈장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영화감독 박찬욱 이탈리아 피렌체서 문화예술상 받음
2017년 세계최대 당진 석탄화력발전소 앞에서 석탄화력발전중단 요구하는 브레이크 프리(Brake Free) 캠페인
2018년 시진핑의 초청으로 김정은이 이날부터 28일까지 태양호를 타고 극비리에 방중
2020년 경찰청 ‘n번방사건’ 수사 위해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 설치, 텔레그램 성착취물 관련자126명 검거
2021년 북함 함경남도 함주 일대에서 동해안으로 신형전술유도탄 2발 발사
2021년 누리호 1단 연소 시험이 성공
2022년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서면표결로 열린 구단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야구인 출신 첫 KBO 총재로 선출
708년 콘스탄티노, 제88대 교황으로 즉위.
940년 헤이안 시대 중기의 호족 다이라노 마사카도 작고
1005년 알바 왕국의 왕 키나드 막 두브 작고
1306년 로버트 1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르다.
1351년 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무장 고노 모로나오 작고
1655년 네덜란드학자 호이겐스 토성의 위성 타이탄 발견
1801년 독일시인 노발리스 폐결핵으로 세상떠남(29세) 『푸른 꽃』 “우리는 우리 정신의 깊이를 모른다. 신비의 깊은 영역으로 향한다. 우리들 내면이 아니면 아무 곳에서도 영원과 영원의 세계, 즉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세계는 거울의 세계다. 그것은 자신의 그늘을 빛의 세계에 지운다.”
1829년 그리스 독립
1867년 이탈리아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출생
1881년 헝가리 작곡가 벨로 바르톡 출생
1895년 이탈리아군 에티오피아 침공 개시
1904년 한스 벨첼(Hans Welzel) 독일의 형법학자이자 법철학자 출생
1905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한 독일인 장교 알브레히트 메르츠 폰 크비른하임 출생
1914년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노먼 볼로그 출생
1914년 프랑스의 시인, 오크어 부활 운동가 프레데릭 미스트랄 작고
1918년 음의 울림에 중점을 둔 섬세하고 감각적인 음색으로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연 프랑스 인상파음악의 선구자 클로드 드뷔시 세상떠남(56세)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야상곡’ ‘교향시 바다’ ‘리어 왕’ ‘관현악을 위한 영상’, 도자기상인의 아들, 1894년 성악곡 ‘방탕한 아들’로 로마대상
1919년 독일의 조각가 렘브루크 사망
1928년 미국의 우주 비행사 - 1970년 아폴로 13호 비행사령관 - 제임스 러벨 출생
1924년 황비홍(1847년~) 작고 : 중국의 무술가
1946년 제1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열림
1949년 중국 베이징으로 수도 옮김
1951년 이라크, 석유국유화 법안 결정
1951년 미국의 영화감독 및 영화 작가 오스카 미쇼 작고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 출범.
유럽 6개국(서독·네덜란드·룩셈부르크·이탈리아·프랑스·벨기에) 대표가 로마에 모여 회원국 간 자본, 상품, 노동력,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 유럽경제공동체에 조인 하였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석탄과 철강산업의 통합을 제창하며 꿈의 실현에 나섰다. 이 제안은 유럽연합이 이 날을 ‘유럽의 날(Europe Day)’로 기념할 만큼 유럽통합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듬해 4월 프랑스·서독·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발족시키면서 ‘유럽 합중국’을 향한 유럽인들의 먼 여정이 시작됐다.
1957년 3월 25일에는 6개국 대표가 로마에 모여 회원국 간 자본·상품·노동력·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창설에 조인함으로써 유럽통합은 이제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
1967년 7월에는 EEC, ECSC, EURATOM이 '유럽공동체(EC)'로 헤쳐모여 유럽통합의 기틀을 더욱 공고히 했다. 공동시장을 단일시장으로 전환려는 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독일의 통일과 소련의 몰락은 유럽에 새로운 통합방식을 요구했다. 1993년 11월 궁극적으로 유럽연방을 지향하는 '마스트리히트조약' 이 발효됨으로써 오늘날의 유럽연합(EU)이 출범했다.
1958년 서독 하원 국방국의 핵무장 결의안 가결
1964년 미국-일본간 TV 우주중계실험 성공
1969년 파키스탄 아유브칸 대통령 하야
1971년 중국 미국탁구팀 초청
1975년 파이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피살.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 국왕이 1975년 3월 25일 조카에게 피살돼 오후 2시13분 사망했다. 향년 68세였다. 조카는 현장에서 체포됐지만 리야드 궁전에서의 암살 사건은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다.
왕실은 정신이상인 조카의 우발적인 사고라고 발표했지만 나중에 파이잘 국왕에 대한 사적인 감정과 절대왕정에 대한 사상적 비판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어 단두형에 처해졌다.
1964년 11월 국왕에 즉위한 파이잘은 곧 국가재정을 건전히 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해 국민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다. 제3차-4차 중동전 때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국가들에게 석유금수라는 강한 태도를 보였으나 중동평화에 대해서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함께 평화추진을 위해 노력했다
1976년 독일화가 요제프 알버스 세상떠남 “나는 80종류의 노랑과 40종류의 회색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의도하는 색채실험의 대상으로 사각형을 이용해 색깔이 끊임없이 변하는 색채로 일련의 사각형 도형을 그림
1977년 소련, 유럽 및 극동에 SS-20미사일 배치
1981년 미국 보스턴의대, 사상초유의 암면역동물 생산에 성공
1983년 인류최초로 인공심장 이식받은 바니 클라크 수술 112일만에 세상떠남, 미국 유타대학 병원, 이 인공심장은 송아지나 양에 이식되던 것, 가슴을 3번 절개 7번 사경을 헤맴, 수술비용은 10만$ 넘음
1991년 마르셀 르페브르(1905년~) 작곺: 성 비오 10세회의 설립자
1992년 우주미아,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등 313일 만에 귀환.
우주정거장 미르호에서 우주 탐사임무를 수행하다가 구 연방의 해체로 지구귀환이 늦추어진 세르게이 크리칼료프와 알렉산데르 볼코프 등 우주비행사 3명이 우주선 소유즈 TM-13호를 타고 우주미아생활 313일 만인 1992년 3월 25일 귀환했다.
1991년 5월 18일 구 소 우주정거장계획의 하나로 미르호에 탄 크리칼료프는 만10개월 열흘간을 우주에 머물며 각종 측량과 기계실험을 해왔다. 크리칼료프가 우주미아가 된 것은 러시아가 돈이 없어서 그의 귀환을 위한 우주선을 발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그가 돌아오게 된 것은 독일이 2천4백만달러를 지원해 귀환을 위한 우주선 발사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강진, 최소 2000명 사망
2003년 미국 LA법원, 스팸메일에 첫 실형 선고.
미국에서 스팸메일을 발송한 컴퓨터 전문가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건에 7000여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법 루디스 베어드 판사는 25일 토네이도 디벨럽먼트사(社)의 전 시스템운영자로, 인터넷 ID ‘시크릿 스퀴럴(Secret Squirrel)’을 사용하는 피고 브렛 맥데이널(30)에게 1년4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맥데이널씨는 자신의 전 직장 고객들에게 한꺼번에 수천건의 스팸메일을 발송해 전산망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혐의로 기소됐었다. 법원은 네티즌에게 불법으로 스팸메일을 발송해 특정기업에 피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며 지난해 그를 컴퓨터 사기 및 남용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검찰의 편을 들어줬다.
일본에서도 이날 휴대전화 이용자에게 대량의 스팸메일을 보낸 혐의로 도쿄의 인터넷 서비스회사에 656만엔(7000여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도쿄 지방법원은 이날 “수신처가 명확지 않은 스팸메일을 대량 발송한 경우에도 정상적인 메일을 보낸 것과 동액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이 업자는 지난해 4월부터 50일간에 걸쳐 약 400만통의 스팸메일을 발송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휴대전화 이메일 서비스를 운영 중인 i모드측은 “수신자가 내야 하는 메일 이용요금을 대신 지불하라”며 이 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
2012년 에드 굴드(1988년~) 작고 : 영국 에즈월드(Eddsworld)의 애니메이터
2012년 타이거 우즈 아널드 퍼머 초청대회 우숭 PGA투어 통산72승 2009년11월이후 2년반 만에 우승
2013년 유로존 회원국들 키프로스 구제조건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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